이란, 우방 中-러 비방 구호 왜?

  • 입력 2009년 7월 20일 02시 56분


개혁파들, 아마디네자드 비호-위구르 무슬림 희생에 격분

‘중국에 죽음을’, ‘러시아에 죽음을’.

17일 이란 테헤란에서 낯선 구호가 울려 퍼졌다. 대표적 반미국가인 이란에서 ‘악마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외침은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핵과 에너지 문제 등에서 협력해 온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고 AP통신이 18일 전했다.

반(反)중 반러의 움직임은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전문가위원회 의장)이 17일 테헤란대에서 열린 이슬람 금요예배에 등장하면서부터. 이란의 막후 실세이자 개혁파의 핵심인물인 그가 대선 이후 공개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개혁파 시위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구속자 석방 등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발언은 온건했지만 지지자들의 발언은 거침없었다. ‘아자디(자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퇴진’ 등의 구호 속에 ‘중국, 러시아, 부탁이다 제발 나가라’ 등의 외침이 섞여 들었다.

이란 개혁파가 중국과 러시아를 비난한 것은 이 두 나라가 대선 후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당선을 즉시 인정하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 타도 대상인 현 정권을 두 나라가 비호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위대는 중국에 대해 특히 강경했다. 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사태로 무슬림 위구르인들이 희생됐기 때문. 이날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신장위구르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자 ‘중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는 더욱 거세졌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우리는 중국에서 무슬림에 대한 적대를 더는 목격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온건하게 비판하면서 시위대에 “구호를 멈추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신장위구르 사태에 미온적으로 나온 이란 정부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개혁파 고위성직자인 아야톨라 유세프 사네이는 “무슬림의 수호자로 자처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이란이 중국에서의 무슬림 학살에 침묵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란 정부는 신장위구르 사태에 대해 보도통제를 하고 위구르족을 ‘무슬림’이 아닌 ‘불량배’라고 표현하고 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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