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700명 쪽방촌에 달랑 1칸 짓고 생색

  • 입력 2009년 7월 20일 02시 56분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왼쪽 가건물은 4개 층으로 지어져 층고가 어른 키 높이에 불과하고, 넓이도 성인 2명이 누울 수 없는 쪽방으로 구성돼 있다. 이은택 인턴 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왼쪽 가건물은 4개 층으로 지어져 층고가 어른 키 높이에 불과하고, 넓이도 성인 2명이 누울 수 없는 쪽방으로 구성돼 있다. 이은택 인턴 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서울시 “달동네 화장실 문제 해결” 선언한 지 8개월

돈의 - 창신동 화장실 절대부족… 새벽 골목서 ‘몰래 목욕’ 빈번
영등포는 밤엔 잠겨 쓸수 없어… 공간 확보못해 아직 없는 곳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7년째 생활해 온 김성호 씨(72)는 새벽이면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을 떠서 골목으로 나간다. 주섬주섬 옷을 벗고 쭈그려 앉은 채 마른 몸 위로 조용히 찬물을 끼얹는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을 이용해 그렇게 몸을 씻는다. 길거리에서 몸을 씻을 때면 행여나 난폭한 취객들이 물소리를 듣고 올까 조마조마한다. 수치심보다 공포감이 더 크게 밀려오는 시간이다.

쪽방촌은 두 다리 쭉 뻗고 눕기도 힘든 ‘쪽방’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동네다. 매일 하루 방값 7000원을 내거나 월세로 20여만 원을 내는 일용직 노동자나 독거노인 등이 산다. 서울시내에는 종로구 돈의동과 창신동, 영등포구 영등포동, 용산구 동자동, 중구 남대문로5가 등 5대 쪽방촌이 있다. 이곳 주민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화장실 문제. 대부분이 불법 개조 건물이라 화장실을 한 곳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있더라도 다른 입주자들과 공유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 쪽방촌 생활시설 확충했다는데…

이달 15일 돈의동 쪽방촌 내 한 건물. 성인 남성 어깨보다 좁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을 가려면 곧장 계단부터 올라가야 한다. 경사가 70도에 가까워 젊은이들도 손으로 짚어가며 기어 올라가야 할 정도다. 계단 폭이 좁아 발은 반도 채 못 디뎠다. 그렇게 올라간 곳의 복도엔 낡은 좌변기 하나가 있었다. 샤워기는 없었고 수도꼭지가 전부다. 문을 잠글 수도 없다. 주민 김모 씨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오전 5시면 근처 지하철역에 가서 세수하고 화장실을 사용한다”며 “몇 시쯤 어디로 가야 이용하기 좋은지 다들 훤하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쪽방촌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공용화장실이 아예 없거나 1곳 정도뿐인 쪽방촌 화장실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설치가 가능한 곳부터 공중화장실을 만든다는 계획.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돈의동과 창신동 쪽방촌 상담소에 이달 새로 만든 공중화장실은 남녀 화장실과 샤워실 각각 한 칸이다. 각각 700명과 300명에 달하는 주민 수요를 충족하기엔 부족했다. 600명이 사는 영등포동에는 4월 8000만 원을 들여 태양광 슬라이딩 자동문까지 갖춘 ‘최첨단’ 공중화장실을 만들었다. 이 역시 여성화장실 4칸에 남성화장실 2칸(장애인용 1칸)이 전부다. 16일 찾아가 보니 그나마 태양광 자동문은 고장 나 있었다. 주민 강모 씨(58)는 “이게 태양광 시설인지 알게 뭐냐”며 “오후 11시 이후엔 문이 잠겨 쓸 수도 없다”고 말했다. 동자동과 남대문로5가엔 이마저도 없다. 화장실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 주민 김모 씨(54)는 “화장실이나 편의시설이 없는 곳이지만 마음껏 떠들 수 있어서 고시원을 떠나 이리 왔다”고도 했다.

사유지를 매입하기엔 예산이 부족하고 이동식 화장실이라도 설치하려 들면 주변 상인들이 반대해 화장실 한 칸 마련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주민 대다수는 무더운 쪽방촌에서 여전히 화장실 문제로 답답하다는 반응이지만 서울시는 15일 ‘쪽방촌에 생활편의시설 확충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 정부도, 기업도 등 돌린 사각지대

돈의동 쪽방촌의 한 주민은 “여기는 아주 유명한 곳”이라며 “역대 대통령과 시장들이 때만 되면 여기에 찾아와 주민들에게 힘내라며 격려하고 돌아갔다”며 “기초적인 화장실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아무리 높은 분들이 다녀가면 뭐하느냐”고 말했다.

쪽방촌은 주민의 평균 42%가 국민기초생활수급자임에도 복지시설이 아닌 이용시설로 간주된다. 복지정책이 노인이나 장애인 등 특정 집단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공동체에 해당하는 쪽방촌은 복지시설로 인정받지 못한다. 보건복지가족부 지침에 따라 지역별로 설치된 상담소는 시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공하지만 부족한 예산에 허덕인다. 기업 후원도 기대하기 힘들다. 돈의동 상담소는 신형 세탁기 2대를 들여놓으면서 해당 기업으로부터 지원은커녕 가격 할인조차 받지 못했다.

영등포 쪽방상담소의 한 사회복지사는 “복지시설이 아니라 후원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질 때 잠깐 들어오는 게 전부”라며 “그나마도 불황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임동현 인턴 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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