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현]국제기구 유치하려면 ‘매력’ 개발을

  • 입력 2009년 7월 20일 02시 56분


지난달 29, 30일 이집트의 휴양도시 샤름 알셰이흐에서는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창립을 위한 제2차 준비위원회가 열렸다. 준비위원회는 IRENA의 사무국 소재지를 만장일치로 아랍에미리트의 마스다르로 결정했다. 각축전을 벌인 독일의 본과 오스트리아의 빈이 패배를 인정하고 입후보를 철회한 데 따른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도시가 본과 빈을 이김으로써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뉴욕, 제네바, 빈 등 생활 여건이 좋은 선진국에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사례가 됐다.

풍력,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어느 나라보다 앞서 나간다는 독일은 2004년 IRENA의 설립을 최초로 제안했고 사무국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빈은 전통적인 외교 중심도시이자 뉴욕 및 제네바와 더불어 세계 3대 국제기구 소재 도시라고 일컬어진다. 아랍에미리트가 성공한 원인은 무엇일까? 혹자는 서방 국가가 아랍에미리트와 같은 온건 아랍국을 지원해야 하는 국제정치적 상황이나 개도국의 몰표 지원에서 해답을 찾겠지만 근본적으론 아랍에미리트가 쏟은 지대한 열정과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

아랍에미리트는 일명 ‘마스다르 프로젝트’를 통해 아부다비 근교에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신도시 마스다르의 건설을 추진하는 등 재생에너지 선도국가로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쌓아왔다. 또한 2015년까지 해마다 2200만 달러를 IRENA에 지원하고 그 후에도 매년 12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외교장관은 한국을 포함한 100여 개 회원국을 일일이 방문하는 등 활발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IRENA 사무국이 마스다르에 자리 잡으면 이 사막도시는 재생에너지 전문가가 상주하고 관련 국제회의가 수시로 개최되는 녹색의 국제도시로 탈바꿈한다. 아랍에미리트도 재생에너지의 선도국으로 부각될 것이다. 사실 필자가 정부 대표로 참석했던 올해 1월 제1차 준비위원회에서 사무국 유치 희망국을 접수할 당시 우리도 신청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경쟁에 뛰어들기에는 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판단으로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다른 국제기구를 유치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국제기구와 관련된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이를 추진함으로써 이슈를 선점해야 한다. 이로써 해당 분야에 관한 국제적 논의에서 영향력을 갖게 됨은 물론이고 관련 국제기구를 창설하는 데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산유국으로서 재생에너지와는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마스다르 건설 계획 등 재생에너지 선도국의 이미지를 꾸준히 부각시켰다.

둘째, 국제사회에 매력적인 유치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아랍에미리트 역시 과감한 재정 지원 등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했다는 점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제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돈으로만 국제기구를 유치하기는 어렵지만 재정적 기여에 인색한 모습을 보인다면 다른 나라가 지지할 리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의 여건이다. 외국인에게 필요한 국제학교와 영어로 진료하는 병원이 우리 도시에 있는가? 시민은 옆집의 외국인에게 따뜻한가?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개방적이고 유연한가? 제네바, 빈, 파리는 이런 검증을 통과한 국제도시다. 국제기구 유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제 수준의 서비스 인프라를 갖춘 국제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국제기구 유치는 국가나 도시의 브랜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네덜란드 헤이그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스위스 로잔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쉽게 떠오른다. 영향력 있는 국제기구의 유치는 글로벌 시대의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조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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