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근의 멘탈 투자 강의]인간의 예측 본능, 증시에선…

  • 입력 2009년 7월 20일 02시 55분


인간의 예측 본능, 증시에선 함정될 수도

‘예측 성공’ 확인받고 싶어 이익난 주식 서둘러 매각하고
‘예측 실패’ 인정하기 싫어 손해난 주식 계속 보유하기도

주식시장의 전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투자자들은 지난 두어 달간 진행된 박스권 장세의 결론이 어떤 것일지가 궁금하다. 전문가들 사이에 주가지수를 예측하려는 시도가 이처럼 많았던 적도 드물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미래를 예측하려는 본능이 있다.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예측에 기반하여 행동해 왔다. 만약 되는 대로 살고, 먹이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굶는 식의 무작위의 삶을 살았다면 인류는 이미 멸종했을 것이다. 번개가 치면 그 다음 천둥소리가 들리고 구름이 서쪽으로 가면 비가 오고 들소 떼가 몰려가면 이어서 맹수가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들을 경험으로 축적해서 미래의 상황에 대비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비록 지진이나 화산 폭발을 미리 감지하는 초자연적 본능은 없었지만 이처럼 경험에 기반한 기본적인 예측 능력이 있었기에 인간은 발전했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중국의 음력에도 예측 기능이 있다. 윤달이 낄 때 날씨가 어떤지, 어떤 절기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등 농사를 지으면서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이 여기에 숨어 있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확률적으로 매우 정확한 편이다.

인간은 이 같은 예측을 하고 그 예측이 들어맞을 때 엄청난 희열을 느끼게끔 진화해 왔다고 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예측이 맞았을 때 사람이 느끼는 희열감은 마치 마약을 할 때의 쾌감수준과 맞먹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렇게 예측을 잘해서 인류는 먹을거리를 확보했고 갖가지 큰 자연 재해와 천적의 공격을 이겨내며 번성했다. 인간 이외에 미래를 예측하는 동물은 없고 예측이 들어맞았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동물은 더더욱 없다.

이처럼 예측에 능숙했던 인간들은 17세기 인류 역사에 등장한 주식시장에서, 생전 처음 보는 난이도의 예측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과거의 자연 환경과 주식시장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일단 인간들은 그들의 장기인 예측 본능을 또 한 번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에 훌륭하게 써먹었던 그들의 ‘예측 유전자’는 현대 주식시장에서 활용하기에는 너무 구식이었다. 이들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주식시장 특유의 복잡성을 나의 기준에 맞게 단순화해 판단하는 것뿐이었다. 지난 주가의 움직임을 그래프로 만들고, 예전과 비슷한 환경이 지금 다시 오고 있다고 느껴질 때, 증시도 예전처럼 변할 것이라 예측했다. 이른바 ‘기술적 분석’, 자본주의에 아직 덜 익숙해진 인간의 모습이었다. 많은 투자자들은 이런 식의 분석에 본능적으로 빠져들었다(대부분의 세계적인 투자전문기관은 그것의 유용성에 대한 의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술적 분석을 담당하는 팀을 따로 두지 않는다).

인간의 예측 욕구는 매매패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익이 난 투자는 자신이 예측을 잘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 사실을 확정짓기 위해 빨리 팔아 버린다. 그리고 손해가 난 투자는 예측이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싫기 때문에 계속 보유해서 손해만 더 커지게 만든다. 이처럼 이익이 나면 쉽게 매도하고 손해를 보면 길게 끌고 가는 것을 기분효과(disposition effect)라고 한다. 투자 전망이 밝은지를 보고, 아니라고 판단되면 빨리 파는 것이 제대로 된 투자 자세지만, 사람들은 투자 그 자체보다도 자신의 예측력에 더 관심이 많다.

인간은 낙후된 예측의 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연속으로 정확한 예측을 하는 능력은 아직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우연히 몇 번의 예측이 맞으면 자신감을 갖고 예측(매매)을 더 자주 한다. 또 그 쾌감에 지나치게 빠져들면 매매 중독현상도 생긴다(판돈효과·house money effect). 마치 카지노에서 초보 도박꾼이 우연히 딴 돈을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고 큰 베팅을 해 화를 자초하는 것과 같다.

내가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만 예측하고 투자하면 전체를 보지 못해 투자를 그르칠 수가 있다. 예측을 제대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려면 보다 복합적인 틀을 갖고 종합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투자의 대가들이 단기적인 시장 예측을 포기하고 기업 가치나 경영진의 능력 같은 객관적인 지표를 보고 장기 투자에 매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단기 예측이 얼마나 황망하고 어려운지를 알기 때문이다.

송동근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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