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 뺨치는 인터넷 오염주범 ‘넷찔이’

  • 입력 2009년 7월 19일 14시 17분


남들의 시선과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고 늘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말한다. 불륜 상대와 재혼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조강지처를 죽이려는 무모한 짓도 불사한다. 현실 사회에선 별 능력도 없으면서 큰소리치고 허세 부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주인공 정교빈(변우민 분)은 '찌질이'의 전형이다. 남몰래 뒤에 숨어서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다가도 정작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면 곧바로 비굴해진다.

요즘 인터넷에도 정교빈 같은 찌질이들이 넘쳐난다. 인터넷상에 무분별한 욕설이나 비방 댓글을 올리는 악플러와 함께, 남들을 의식하지 않는 '괴이한' 행동으로 다른 누리꾼을 불쾌하게 만드는 '넷찔이'(인터넷 찌질이)가 바로 그들이다.

넷찔이는 각종 사이트, 인터넷 카페에서 게시판 성격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자료를 게재하고 특정 연예인 관련 자료나 광고글 등으로 도배를 하며 분위기를 망친다. 토론 게시판에선 남들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주제를 문제로 제기하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특징을 보인다.

넷찔이는 악플러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자주 등장한다. 디시인사이드 등 주요 사이트, 게시판에선 이들을 'ㅉㅈㅇ'(찌질이의 앞 자음을 딴 것)라 표현하고 '공공의 적'으로 다룬다.

이들은 다른 누리꾼의 비난에 개의치 않고 왕따를 자초하는 특징을 보인다. 심지어 이 같은 비난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생각하면서 즐기는 이들도 있다.

넷찔이는 크게 '나홀로 형' '낚시꾼 형' '잘난척 형' 등 3개 유형으로 나뉜다.

'나홀로 형' 넷찔이는 사이트와 게시판 등에 다른 누리꾼이 궁금해 하거나 원하지 않는, 자기 혼자만 관심 있는 게시물을 꾸준히 올려 분위기를 흐리는 유형이다. '잘못 왔다' '길을 잃었다' 등 완곡한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온라인 소통의 장이라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연예인 팬사이트에 다른 연예인 자료를 게재하거나 청소년도 이용하는 인터넷 토론방 등에 성인용 게시물을 게재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아이돌스타 관련 사이트에서 라이벌 관계에 있는 다른 연예인 자료나 안티성 게시물을 고의적으로 올려 누리꾼을 자극하는 넷찔이들이 많다.

스포츠선수 등 유명인 관련 사이트도 넷찔이들의 게시물로 몸살을 앓는다. 디시인사이드의 한 관계자는 "아사다 마오 선수의 극성팬이 사이트 내 김연아 갤러리에 욕설은 아니지만 편파적인 시각이 담긴 글을 올린 뒤 상호 간 비방이 심해지면서 대립을 조장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낚시꾼 형'은 거짓 게시물을 통한 소위 '낚시질'로 누리꾼을 속이려는 이들이 해당된다. 자신의 미니홈피, 블로그 등의 조회수를 높이는 것이 목적인데 이 같은 넷찔이들은 광고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이트에 이슈가 되는 동영상, 사진 등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다. 누리꾼들이 호기심을 갖고 링크된 사이트 주소를 클릭하면 엉뚱한 내용의 미니홈피나 광고 등이 화면에 뜨고 '낚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식이다.

'잘난척 형'은 주로 토론 게시판에 많다. 일반 관심사와 동떨어진 자신의 오타쿠(한가지에만 몰두하는 마니아)적인 지식과 취향을 과시하는 글을 올린다. 'OOO에서 1년 동안 일했던 사람' 'OOO을 10년 동안 공부한 사람' 등 익명이기 때문에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거창한 경력을 내세우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이 '참 잘 나셨네요' '그렇게 똑똑한 분이 왜 하루 종일 인터넷 게시판에서 죽칠까' 등 비꼬는 반응을 보이지만 이들은 오히려 "내가 부러우면 부럽다고 솔직히 인정하라"며 당당하다.

넷찔이는 그러나 악플러와 달리 피해 당사자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각 사이트나 인터넷 카페가 이들을 처리하기도 쉽지 않다. 청소년이 이용하는 게시판에 성인용 게시물을 올리는 등 운영기준을 어기는 행동에 대해서만 탈퇴 조치로 처리하는 정도다.

넷찔이들도 대부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표현의 망동'으로 교묘히 이용한다. 인터넷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운영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한 이 같은 이용자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게시물에 욕설 등이 포함됐는지 분석해서 (탈퇴, 경고 등 조치를) 판단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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