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만-천명-유신이 삼각관계?

  • 입력 2009년 7월 18일 15시 08분


신라시대를 다룬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사진제공 MBC
신라시대를 다룬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사진제공 MBC
'선덕여왕' '천추태후' 등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곁들인 퓨전사극이 최근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적인 효과에 치중하다 보니 역사적 고증을 등한시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MBC '선덕여왕'은 진위 논쟁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크게 의존해 만든 사극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짧은 기록 외에는 워낙 신라시대의 자료가 부족했던 탓도 크다. 또한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화랑도는 물론 근친혼, 다부제, 자유연애 등 신라인의 파격적인 성풍속이 비교적 자세히 기술돼 있어 현대인의 흥미를 끌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드라마 '선덕여왕'은 필사본 '화랑세기'의 설정마저 상당 부분 무시한다.

드라마에서는 덕만공주(이요원 분, 후에 선덕여왕)와 천명공주(박예진)가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쌍둥이 딸로 나온다. 쌍둥이 공주가 출생하면 성골 남성은 씨가 마른다는 예언이 맞아떨어지도록 공주를 쌍둥이로 설정한 것. 그러나 사료에 따르면 이들은 쌍둥이가 아니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는 천명이 언니로, '삼국사기'에는 덕만이 언니로 기술돼 있다.

쌍둥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덕만은 유모와 함께 도망쳐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자란다. 신라로 돌아온 뒤로는 남장하고 낭도로 생활한다. 비극적인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난 주인공이 세상을 떠돌며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왕이 된다는 전개인 것이다.

또한 천명공주의 아들인 김춘추(602년~661년)에게 두 여동생을 시집보내야 할 김유신(595년~673년, 엄태웅)은 드라마에서 천명, 덕만 두 공주와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천명공주가 화랑 유신에 깊은 신뢰를 보이고 덕만은 남장을 한 채 유신 밑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그러나 김춘추가 태어난 해를 기반으로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보면 덕만은 유신보다 7~15세 연상이 된다.

선덕여왕 못지않게 극중 비중이 큰 인물인 미실궁주(고현정)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필사본 '화랑세기'에만 나온다. 이 때문에 미실은 실존 자체가 논쟁 대상이기도 하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미실은 진흥왕 5년(544)에서 진흥왕 9년(548) 사이에 태어나 진흥왕에서 진평왕 치세 때까지 약 40년간 빼어난 미색과 방중술로 신라 정계를 좌지우지한 여걸이다.

그는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등 3대에 걸쳐 후궁 노릇을 하고 세종 사다함 설원 등 세 명의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를 비롯해 수많은 귀족 남자들과 숱한 로맨스를 뿌린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미실의 남동생 미생도 빼어난 미남자에 언변까지 좋아 여인들이 스스로 첩이 되고자 줄을 섰으며 아들이 1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문제는 라이벌로 묘사된 선덕여왕과 미실의 나이 차가 거의 30살가량 된다는 점. 선덕여왕의 즉위 당시 나이는 48세에서 50세, 이 즈음 미실은 80세 정도로 추정된다. 더구나 미실은 진평왕 28년(606) 또는 그 이듬해에 60세를 약간 넘겨 병을 얻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미실과 선덕여왕을 동시대 인물로 두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역사 속 또 다른 여성권력자를 그린 KBS2 '천추태후'도 역사 왜곡 논란에서 비켜가지 못한다.

'고려사' 등에 따르면 고려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채시라)는 연인 김치양(김석훈)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목종의 후계자로 세우려다 실패하고 축출된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서북면 도순검사(평안도 일대 부대 사령관) 강조는 목종을 폐위시키고 왕건의 손자인 대량원군(훗날 현종)을 왕으로 등극시킨다. 김치양 부자도 강조 세력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김치양이 마의태자의 손자로 신라의 부흥을 위해 복수의 칼을 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실제 이름도 김행이고 여진족 마을에서 자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실제 김치양은 황해도 일대의 호족이었으며 천추태후의 외척이다. 김행이라는 인물은 '고려사'에서 금 태조 아골타의 선조로 기록돼 있다. 일각에서는 드라마 '천추태후'의 마지막 부분에 김치양과 천추태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지 않고 여진족 땅으로 도망쳐 금나라의 시조가 되는 내용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강조 장군도 드라마에서처럼 발해유민 출신이라는 기록은 없다. 다만, 천추태후의 심복으로 나오는 대도수 장군은 발해 마지막 태자 대광현의 아들이 맞다.

또 천추태후의 오라비인 성종에게 소찰리라는 거란인 부인은 없었다. 성종은 문덕왕후 유씨, 문화왕후 김씨, 연창궁부인 최씨 등 세 명의 부인을 두었다. 이들 중 문덕왕후는 소생이 없었고 문화왕후가 1녀, 연창궁부인이 1녀를 낳았다. 이 두 딸은 나중에 모두 현종에게 시집간다.

영국 초등학생이 역사적 위인을 묻는 질문에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사 간달프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는 우스개가 있다. 지난해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를 끌자 신윤복을 진짜 남장 여자로 믿는 어린이들도 생겨났다. 이 때문에 사료를 무시한 사극에 대해서는 '창작의 자유를 넘어선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예외 없이 따라다닌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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