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정가에 ‘비둘기’는 없다

  • 입력 2009년 7월 18일 03시 03분


美국무부 기자회견 자리 ‘협상파’ 보즈워스-성 김 빠져
“유엔결의엔 ‘이빨’이 있다”…강력한 대북제재 지속 공언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야수의 얼굴을 한 국제사회의 성난 태도. 비둘기가 모두 날아가 버린 뒤 싸늘한 냉정만이 감돌고 있는 워싱턴의 표정.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내민 악수의 손을 뿌리친 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막무가내의 도발위협으로 일관한 북한이 자초한 달라진 환경이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악행에 대한 보상을 노리는 북한의 협상 패턴을 더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굳혔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북한이 체제행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전에는 절대로 철회하지 않을 기세다.

15일 오후 미국 국무부 기자회견장. 비실명 보도를 전제로 갑작스럽게 마련된 이날 회견장에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미국의 대북제재를 주도하는 주요 인사가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국무부와 재무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주요 인사는 물론이고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에서 채택된 결의 1874호를 이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북제재 전담반의 인사가 총망라된 자리였다.

하지만 당연히 자리를 함께했어야 할 2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최우선적으로 지명됐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북한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은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성 김 대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회견장에서는 “비둘기가 모두 날아가 버렸네”라는 촌평이 나왔다. 2009년 7월 워싱턴의 분위기를 보여준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 된 셈이다.

고위당국자들이 익명으로 전한 메시지도 매우 단호하고 강경한 대북태도를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했다. 고위 당국자 A 씨는 “최근 미국 정부당국자들의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순방과 말레이시아 홍콩 등 동남아 및 유럽 방문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한 완벽한 공감대를 이뤘다”며 이번에야말로 북한의 ‘버릇’을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가 선택한 단어들 역시 ‘의심의 여지없이(undoubtedly)’ ‘엄청난(extraordinary)’ ‘절대적으로(absolutely)’ ‘근본적으로(fundamentally)’ 등 외교관이 흔히 사용하지 않는 언어를 자주 구사했다.

국무부의 배경설명이 있기 3시간 전 워싱턴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연설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에 대해 “‘진정한 이빨(teeth)’을 가진 행동계획”이라고 표현했다. 과거 결의안들이 실질적인 대북제재의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안보리 회원국들의 이행결의 의지 결여 및 북한의 대화복귀에 따른 제재 완화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대북제재는 반드시 북한을 징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

실제로 16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인물 5명과 5개 기업, 기관 및 2개 물자에 대한 제재를 확정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이제는 구체적인 실행단계에 들어갔음을 알렸다. 특히 안보리 대북제재 조치로는 처음 도입된 핵프로그램 관련자 개인에 대한 해외여행 금지 및 계좌동결 조치는 실효성 여부를 떠나 큰 상징성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단천상업은행과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등 기존 제재대상 기업과 기관에 더해 남천강무역회사 등 5개 기관을 대상으로 선정함으로써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제조 및 거래와 관련한 북한의 기업과 기관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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