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내 마음속 메기대왕

  • 입력 2009년 7월 18일 03시 00분


마음속의 풍경 강미덕, 그림 제공 포털아트
마음속의 풍경 강미덕,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어린 시절 나는 강변 동네에 살았습니다. 동네 바로 앞에 강이 있었고 강 옆에는 물이 맑은 작은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동네 형들이 그곳에 메기가 산다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웅덩이가 그리 크고 깊지 않아 바닥에 납죽 엎드린 검은 메기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나와 아이들은 메기를 보자마자 이구동성으로 모두 그것을 잡자고 환호했습니다. 그래서 나보다 큰 형 둘이 웅덩이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형들이 들어가 메기를 잡으려고 움직이자마자 유리알처럼 맑던 웅덩이는 금세 검붉은 흙탕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웅덩이를 찾아갔습니다. 물이 맑아 바닥까지 들여다보일 때는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던 메기는 흙탕물 때문에 끝내 잡을 수 없었습니다. 메기 잡는 일을 포기한 뒤부터 나는 웅덩이가에 웅크리고 앉아 말없이 들여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하루라도 메기를 보지 못하면 왠지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흙탕물 변신술을 사용하는 게 너무 신기해서 나는 녀석에게 메기대왕이라는 별칭까지 붙여 주었습니다.

메기대왕을 보러 가는 일은 나의 하루생활 중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흙탕물이 피어오르는 게 싫고 메기대왕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게 싫었습니다. 맑은 물을 통해 바닥에 앉아 있는 메기대왕을 들여다보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알게 된 때문입니다. 메기대왕을 잡겠다는 욕심을 버리자 내 마음도 물처럼 맑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메기대왕이 사는 웅덩이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네아이들의 말을 전해들은 어른 몇몇이 양동이와 삽을 들고 웅덩이로 메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나는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정신없이 웅덩이로 달려갔습니다. 과연 그곳에는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여 믿기지 않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흙탕물 때문에 메기를 잡을 수 없게 된 어른들이 양동이로 웅덩이의 물을 밖으로 퍼내고 있었습니다. 그날 어른들은 어둠이 내릴 때까지 메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웅덩이 물을 다 퍼낸 어른들이 진흙투성이가 되어 설쳐댔지만 어찌된 일인지 메기대왕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긴 수염의 메기대왕은 아직 내 마음의 웅덩이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며 때때로 마음이 흐려질 때마다 나는 여섯 살 무렵에 내가 만난 메기대왕을 떠올리곤 합니다. 맑은 물을 탁하게 만들고, 물을 다 퍼내도 끝내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있다는 걸 메기대왕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한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고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메기대왕은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것이 혜안(慧眼)입니다. 탁한 마음으로 소유하지 않고 맑은 마음으로 관조하면 세상은 한없이 투명합니다. 거기, 우리 스스로 터득해야 할 만물의 근본법칙이 있습니다. 마음이 흐려지면 보이지 않고 마음이 맑아지면 보이는 것, 세상은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물이 맑을 때만 보이는 메기대왕, 지금 우리가 사는 흙탕물 속에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그 온전한 자태,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작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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