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떠오른 개헌 논의, 불투명한 앞길

  • 입력 2009년 7월 18일 03시 00분


김형오 국회의장이 어제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국회 내에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올해 정기국회에서 헌법개정 문제를 본격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그는 “18대 국회 전반기인 지금이 개헌의 최적기(最適期)”라면서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새 헌법안을 마련해 국회 의결과 국민투표까지 마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현행 헌법이 급변하는 환경과 시대조류에 대처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며 새 헌법이 ‘선진 헌법’ ‘분권 헌법’ ‘국민통합 헌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인 정부 형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대통령중심제, 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를 포함해 대통령의 연임 여부 및 임기,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는 방안을 담은 ‘토털 개헌’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의장 직속으로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1년간 헌법 연구를 했다.

1987년에 개정된 민주화 헌법이 건국 이후 최장 기간인 22년 동안 유지되며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지만 산업화 민주화에서 나아가 선진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할 필요도 있다. 정치권과 학계, 그리고 일반 국민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개정할 수 있는 경성(硬性)헌법이다. 헌정사가 보여주듯이 대부분의 개헌은 강력한 힘을 가진 대통령에 의해 추진돼 성사됐다. 지금 야당들은 개헌논의 제기의 정략적 의도를 의심하고 있고,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에서도 적극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은 “개헌 논의를 시작하면 이익단체와 각 정파가 자기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여 국론이 사분오열(四分五裂)될 것”이라며 통일 이후에 개헌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올해 정기국회 논의를 거쳐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개헌을 마무리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

정부 형태만 하더라도 정파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다. 현행 5년 단임의 대통령책임제에 대해서도 상황에 따라 논거가 제각각이다. 3년 전 노무현 대통령 때는 ‘연임을 할 수 없어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에 걸리고 국민의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정부 형태건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결국은 제도보다 정당과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민의에 따라 구성된 국회가 대의민주주의 정신을 내팽개치고 제 기능을 상실하다시피 한 터에 정부 형태만 고친다고 모든 게 정상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헌 논의를 둘러싸고 여야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면 국정수행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정국혼란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개헌 논의의 필요성이 부분적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내년 지방선거까지 시한(時限)을 정해놓고 개헌작업을 서두른다고 될 일인지 의문이다. 국회 내에서 객관적 연구와 생산적 논의를 폭넓게 진행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