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성진근]한-EU FTA, 농업경쟁력 높이는 기회로

  • 입력 2009년 7월 18일 03시 00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이 선언됐다. 한국 경제의 외연(外延)은 미국, 동남아국가연합, 인도에 이어 세계 최대 경제권인 유럽 27개국으로까지 확대되는 효과를 보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EU FTA 타결이 국내총생산(GDP)을 2∼3%(15조∼24조 원) 끌어올리고 수출도 2.6∼4.5%(65억∼110억 달러) 증가시킬 것으로 추산한다. 경제의 무역 의존율이 지나치게 높은 한국으로서는 무역 자유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FTA 협상이 이득만 발생시키지 않는다. 관세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자동차 정보기술(IT)산업, 가전, 섬유제품의 수출은 늘어난다. 화학 기계 등 일부 공산품과 농산품의 수입이 늘어나는 등 경제적 피해도 발생한다. 특히 축산과 낙농제품의 수입이 크게 늘어나 개방 15년차에는 농산물 생산액이 2360억 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예상한다. 피해산업의 개방 후유증을 최소화할 농업부문 개방대응대책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한국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은 낮을 수밖에 없다. 농업부존자원, 특히 땅값과 인건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관세가 감축 또는 폐지되면 수입농산물의 국내 도착가격이 하락하고 가격하락과 소득하락의 피해를 본다. 수입농산물과 차별화되는 맛과 품질 및 식품안전성 등 기능의 강화로 가격경쟁력의 비교열위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므로 지나친 패배감에 젖을 필요는 없다. 예컨대 쇠고기는 수입쇠고기보다 2, 3배 높은 가격수준으로도 맛과 품질을 앞세워 시장에서 일정한 몫을 지키고 있다. 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지원 대책의 핵심은 우리 농축산물의 품질과 서비스 경쟁력의 강화에 맞추어야 한다.

값비싼 노동력과 토지투입량을 줄이는 대신 값싸진 자본투입량을 늘리는 방향의 농업구조 개선이 농촌 현장에서 활발하다. 비닐하우스 농사는 토지를 줄이는 대신 값싸진 자본투입량을 늘리는 농사방법이다. 농업기계화는 노동력을 줄이는 대신에 자본투입량을 늘리는 농사방법이다. 말하자면 자본과 기술집약적 농사로의 구조 전환을 위한 값싼 자본의 공급 확대가 또 다른 지원대책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짓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농사마저 수지가 맞지 않아 손을 뗄 사람은 어찌해야 하는가? 시장개방의 확대로 일손을 놓게 될 65세 이상 고령농업인은 1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실업자로 전락하면 실업률은 단번에 2배로 높아진다. 고령자 실업대책 차원에서라도 사회부조적인 개방피해보전 대책을 강화해야 마땅하다.

한국 농민의 저력은 위대하다. 절대빈곤시대의 긴 터널 속에서 주곡 자급을 이룩해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이후 계속 확대된 시장개방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농촌을 지키면서 홍수 예방 등 공익적 기능을 제공했다. 우수한 품질과 서비스 기능의 차별화로 가격경쟁력의 절대적인 비교열위를 극복하면서 우리 국민의 건강산업을 지켜냈다.

한-EU FTA는 한국 농업의 또 다른 재앙이다. 그러나 유럽의 고소득시장으로 고품질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파프리카 재배기술을 배워 와서 일본 시장의 70%를 차지한 농민이다. 돼지 모돈 1마리당 출하마릿수(MSY)를 현재의 14마리에서 22마리로 높이는 덴마크의 양돈기술을 배워 와서 일본이나 중국 시장으로 수출할 기회로 바꿀 저력이 충분하다. 농민의 저력을 발휘할 기반을 한-EU FTA 대응대책이 뒷받침해야 한다. 한국 농업만의 경쟁력을 강화할 정책수단을 선택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때이다.

성진근 충북대 명예교수 한국농업경영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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