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형사사건의 재심(再審) 수용 요건을 확대하는 쪽으로 기존의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16일 성폭행 혐의로 징역 10년이 확정된 안모 씨가 낸 재심청구 재항고 사건에서 “새로 드러난 사실이 무죄의 명백한 증거인지는 새 증거만을 독립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원래 판결의 기초가 된 증거 중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 또는 모순되는 것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새로운 증거가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인 경우에만 재심 청구를 수용해온 기존 판례와 달리 재심 수용 사유를 더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안 씨의 재심 청구에 대해선 “안 씨가 새로운 증거로 제시한 내용은 재심 대상이 된 판결을 뒤집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번 판례 변경으로 ‘새로운 증거’를 평가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앞으로 재심 청구 사건에서의 판단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안 씨는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2002년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안 씨는 이후 ‘사건 직후 피해자의 몸에서 나온 체액에서 정자가 발견되지 않아 범인이 무정자증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수사기록을 토대로 자신이 무정자증이 아니라는 사실이 판결 확정 후 밝혀졌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