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내게 ‘진정한 밤’을 주더라”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5분


“진정한 밤이 있는 곳, 그 조용한 자연 속으로 그림자처럼 가고 싶었습니다.” 현대 중국의 대표작가인 한사오궁 씨는 도시의 소란스러움을 버리고 후난 성의 우펑 산과 퉁팅 호가 만나는 오지마을로 들어가 11년째 생활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레
“진정한 밤이 있는 곳, 그 조용한 자연 속으로 그림자처럼 가고 싶었습니다.” 현대 중국의 대표작가인 한사오궁 씨는 도시의 소란스러움을 버리고 후난 성의 우펑 산과 퉁팅 호가 만나는 오지마을로 들어가 11년째 생활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레
《“내 삶에서 대낮만 있었던 30년이 넘는 긴 세월을 보낸 후 나는 진정한 밤을 맞았다. …‘땡그랑, 땡그랑’ 달빛이 숲 속에서 떨어지는 소리, ‘사부작, 사부작’ 달빛이 언덕과 호수 위로 내려와 앉는 소리가 들린다.”

가오싱젠 이후 중국인 작가 중 노벨 문학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손꼽히는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 한사오궁(韓少功·56) 씨.

그는 1999년 “도시의 소란스러움에 화상을 입고 싶지 않다”며 30여 년간 살던 도시를 떠나 산골의 자연에 뛰어들었다. 그는 중국 후난(湖南) 성의 우펑(霧峰) 산 자락과 둥팅(洞庭) 호가 만나는 곳, 산수화 같은 풍경을 지닌 바시(八溪) 마을에서 11년째 머물고 있다.》

‘산골살이’ 수필집 한국서 출간한 中문단 거목 한사오궁씨

그의 자연 생활을 담은 수필집 ‘산남수북’(山南水北·이레)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 99편의 수필을 담은 이 책은 2007년 루쉰문학상 에세이 부문을 받았다. 이 책이 나오자 “서양에 소로의 ‘월든’이 있다면 동양에는 한사오궁의 ‘산남수북’이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 씨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자연과 문명,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간의 균형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의 일과는 보통 시골 사람의 일과와 같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1시에 잠드는 규칙적인 생활. 닭과 다른 가축을 돌보거나 정원을 가꾸고,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산골 생활은 한 씨에게 가로등과 소음으로 파손된 도시의 밤 대신 진정한 밤을 제공한다. 그는 “조용한 밤이 있는 곳, 발에 차인 돌멩이가 텅텅 빈 공간에 쓸쓸한 소리를 내는 그 자연 속으로 그림자처럼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 속에는 그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얻은 현대문명과 도시의 삶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그는 양약으로 고치지 못한 종기를 직접 캔 약초로 치료하면서 “우리는 더욱 문명화가 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더욱 야만과 무지로 치닫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어 서로 비밀이 없는 산골사람들을 보면서 “도시의 생활이 매혹적으로 비치는 까닭은 은자처럼 지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소설 ‘마교사전(馬橋詞典)’ 등을 통해 중국 향토문화의 뿌리를 탐구하는 ‘심근(尋根)문학’을 주창해온 한 씨는 “자연과 전통이 있고, 사회에서 가장 근간을 이루는 계층이 존재하기에 시골은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며 “박물관과 도서관에는 오직 ‘죽어 있는 전통’만 있을 뿐 ‘살아있는 전통’은 농촌의 삶 속에 녹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농촌의 풍경도 많이 변하고 있다. 그는 “이곳 농민들도 이제 대부분 현대식으로 집을 짓고 커다란 소파와 에어컨을 들여놓는다”며 “이런 모습을 보고 수필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책 속에는 길가에서 나랏일을 말하는 ‘오피니언 리더’ 아저씨, 의사 면허 없이도 명의 소리를 듣는 납작코 한의사, 농사를 가르쳐주는 스승이자 농사일에 미친 사람 등 시골 사람들의 삶이 특유의 해학과 함께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한 씨는 “몸이 버텨주는 한, 적어도 5년 동안은 지금의 생활을 바꾸고 싶지 않다”며 “이 생활이 훨씬 더 인성에 부합하는 삶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 전할 말을 부탁하자 “동아시아는 희망이 있는 땅”이라며 “정신문화의 힘이 있어야 비로소 희망이라는 유일한 길로 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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