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5共방송법’에 당당히 맞서야

  • 입력 2009년 7월 16일 19시 52분


한나라당의 미디어관계법 개정안은 간단히 요약하면 신문과 방송이 서로 상대 분야에 진출할 수 있게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신문이 방송을 운영할 수 있고 MBC가 같은 성향인 한겨레를 겸영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방송에서 지상파 독식(獨食)체제는 장기간 지속되어 왔다. 지상파 채널은 KBS, MBC, SBS 3개 방송의 독점체제로 다른 사업자의 진입이 차단되어 있다. 전두환 정권이 1980년대 초 언론 통폐합을 통해 높은 울타리를 쳐준 덕분이었다. 방송사의 억대 연봉은 독점체제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그 틀이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방송법은 그래서 ‘5공(共) 방송법’으로 불린다.

白을 黑으로 바꾼 기득권 방송

1995년 케이블TV, 2002년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가 생겼을 때도 지상파 3사는 경쟁 상대가 없는 가운데 영토 확장에 열을 올렸다. 요즘도 케이블과 위성방송의 시청률 상위는 지상파 자회사들의 몫이다. 이들은 방송의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보도에서의 이념 편향과 프로그램의 저질화라는 분열적인 얼굴을 보였다. 지난 정권과 유착해 여러 해악을 낳았던 점은 설명이 필요 없는 상식이 됐다.

미디어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가감 없이 전달한 뒤 ‘신문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허용해야 한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야 정상이다. ‘시청자 권리’라는 차원에서도 새로운 방송이 여럿 생겨서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선택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면 즐거운 일이지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거꾸로 ‘신문이 방송에 진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의 조사에서조차 미디어법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45.9%로 긍정적 응답(40.4%)보다 많이 나온 걸 보면 어디에선가 왜곡이 발생하거나 사실 전달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난해 12월 MBC 노조가 미디어법 반대 파업을 했을 때 낯익은 아나운서들까지 거리로 나와 ‘MBC를 지켜주세요’라고 외쳤다. MBC 뉴스는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MBC는 통째로 신문사와 대기업의 소유가 된다’고 연일 공세를 폈다. MBC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행세했다. 민주당은 방송과 공조하며 ‘미디어 악법(惡法)’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흰 것을 검은 것으로 바꾸어 놓는 비상한 솜씨였다.

이런 선전이 먹혀든 탓인지 ‘미디어법이 개정되면 MBC나 KBS 2TV 중 하나를 동아일보가 갖게 된다’고 알고 있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법적으로 독립성이 명시된 공영방송이 민간 신문사에 넘어간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실패하면 민주주의의 敵될 판

한나라당은 상대방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장하면서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방송의 공공성이 무너진다고 정치 논리로 접근했을 때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 논리로 맞섰다. 미디어법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물론 있지만 상대방이 민감한 정치 공세로 나왔을 때 ‘민주주의를 훼손해온 쪽은 당신네들’이라고 대응했어야 했다. 탄핵방송, 김대업의 ‘병풍’ 집중 보도와 같은 정권 편향 방송으로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은 게 바로 그들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오히려 상대방의 논리에 갇혀 그 속에서 방어적 자세로 일관하고 차일피일 법안 처리를 미뤄 왔다. 정책 홍보와 전술의 실패가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미디어법 문제는 당위성 면에서 우리가 꿀릴 것이 없는데 지금까지 밀려 왔다’는 반성론이 나온다. 현 정권이 여기서 더 밀려 미디어법이 무산된다면 지난 정권 ‘방송의 피해자’가 졸지에 ‘민주주의의 적’이자 방송을 탄압한 가해자로 뒤바뀐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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