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오케 종주국에서 노래방을 외치다

  • 입력 2009년 7월 16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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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2001년 12월. '벤처 기업인'의 꿈을 안고 도쿄(東京)에 온 한국 청년은 자신의 사업 파트너들에게 연신 사과를 하고 있었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노래방' 사업이 자금사정 때문에 망했기 때문. 일본인 아내와 자녀들을 볼 면목도 없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자신도 없었다. 벤처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 해 겨울은 눈물마저 얼어붙을 정도로 시렸다.

그리고 7년 후인 지난해 12월 26일, 그는 노래방기기 제조업체 금영의 일본법인 'KY재팬' 사무실에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KOTRA 산하 도쿄 IT지원센터 주최로 열린 IT수출 시상식에서 그가 대표이사로 있는 KY재팬이 실적 부문 최우수상을 탄 것. 지난해 그는 15억 엔(약 202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며 일본 '가라오케(노래방)' 시장에 우뚝 섰다. 8년 만에 일본서 성공한 KY재팬의 양태식 대표. 그의 소감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죄송합니다"부터 시작됐다.

"죄송합니다. 그 때는 정말… 하지만 기쁩니다. 드디어 이제 보답할 수 있게 돼서…"

성공노트#1… 가라오케의 중심에서 한국 IT 기술을 외치다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가스미가세키(霞が關)에 위치한 KY재팬은 11명의 한국인과 1명의 일본인 직원 등 총 12명이 전부. 이 업체는 지난해 일본 가라오케 시장에서 '빅3'라 불리는 노래방 기기 유통업체 BMB(시장 점유율 31%로 노래방 업계 2위)와 손을 잡고 자신들의 IT 기술이 들어간 노래방 기기를 만들었다. 이들의 기술이 담긴 기기는 일본 내에서 1만5000대 넘게 팔렸고, KY재팬은 가라오케 종주국 한복판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소프트웨어 돌풍을 일으켰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노래방 시장의 사업 구조를 감안한다면 KY재팬의 성공은 이례적으로 평가 받는다.

성공의 핵심은 '노래방 기기 제조가 아닌, 노래방 기기 속 프로그램 제조'라는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됐다. 양 대표는 2001년 도쿄에서 인터넷 노래방 사업을 했다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드웨어로는 일본 내 시장 점유율 80%가 넘는 가라오케 유통업체들을 넘어설 수 없음을 깨달았다.

'소프트웨어'라는 해답을 얻은 양 대표는 과거 IT 네트워크 벤처 사업을 했던 경험을 살려 한국인 엔지니어들과 함께 무선 인터넷 기술을 노래방 기기에 접목시켰다. 그가 처음 내놓은 제품은 무선 인터넷이 달린 노래방 리모콘 기기 '우가나비.' 노래 제목, 가수, 가사까지 글씨로 인식하는 터치스크린을 달았고 노래방에 술 취한 손님들이 많다는 것에 착안, 손가락 지문으로 노래방 회원 로그인을 하는 '지문인식 로그인' 기능을 선보였다. "특이하다" "신선하다"라는 시장 반응이 이어졌고, 용기를 얻은 양 대표는 '소통'을 주제로 한 노래방 기기 프로그램 '우가 넥스트'를 내놓았다.

성공노트#2… 노래방도 '소통'이 필요했다

IT 기술과 함께 우가 넥스트에서 양 대표가 강조한 것은 일본인들이 좋아할 아기자기하고 꼼꼼한 프로그램들이었다. 무선 인터넷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노래방을 이용하는 이용자들끼리 노래 대결을 하는 '온라인 노래방 파이터' 게임 프로그램, '슬롯 머신'으로 과거 노래를 연대기 형식으로 검색하는 '룰렛 검색', 노래방 회원 중 점수 상위권에 속한 회원들의 노래를 다운 받아 들을 수 있는 '레슨 서포트' 기능 등이 대표적. 특히 로그인을 하면 어느 노래방에서든지 과거 자신이 부른 노래를 기억해주는 '데이터베이스 기능'은 기록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대환영을 받았다.

일본에서의 성공 요인으로 양 대표는 일본 노래방 시장의 규모를 꼽았다. 양 대표는 "방이 1만개 이상 되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있고 대기업들이 가라오케 시장에 진출하는 등 노래방 시장이 커서 IT 기술이 탑재된 고가의 장비를 들여오는 것에 서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려운 점도 있었다. 양 대표는 "일본은 너무 꼼꼼해 기술 검증 기간이 무척 길었다"고 말했다.

양 대표의 다음 목표는 노래방을 '소통'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 양 대표는 "화상 캠을 달고 메신저 기능을 추가해 한국의 채팅 문화를 일본 노래방에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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