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도루저지율 5할대 훔치면 “딱! 걸렸어”

  • 입력 2009년 7월 16일 0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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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10년 만에 주전 포수 우뚝선 두산 최승환의 야구스토리

5할대의 도루저지율, 예상치 못한 순간 상대팀 투수의 뒤통수를 치는 ‘뜬금포’의 주인공. 프로에 몸담은 지 10년째지만 “개막전부터 주전 배지를 다는 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껄껄 웃는, 그의 이름은 두산 최승환(31)이다. 5월 17일 삼성과의 잠실 더블헤더 1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지 50여일 만에 포수 마스크를 다시 쓰게 된 최승환을 폭우가 쏟아지던 9일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마침 이날은 최승환이 5일 잠실 LG전부터 8일 SK전까지 복귀하자마자 홈런포를 2개나 쏘아올린 직후였다. “부상당하기 전, 목동 히어로즈전에서 연 이틀 홈런포를 치던 컨디션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한마디를 건네자 그는 “난 원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 (홈런을) 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공격형 포수? 난 수비하는 포수

최승환은 대표적(?)인 공격형 포수다. 부상 전까지 1할8푼이었던 타율을 복귀 후 0.235(14일 현재)까지 끌어올렸다. 올 시즌 기록한 홈런수도 벌써 6개. 포수의 역할은 투수 리드와 블로킹, 도루 저지이지만 최승환이 타석에 들어서면 상대투수들은 긴장한다. 그러나 최승환은 “나는 공격형 포수라는 말이 가장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안타나 홈런은 보너스죠. 전 포수잖아요. 9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투수가 ‘좋은’ 볼을 던질 수 있게 하고, 그 볼을 ‘잘’ 받아주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경문 감독도 최승환의 장점으로 타격보다 ‘도루 저지’와 ‘피처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 꼽았다. “세분화하면 아직도 보완할 점이 많다”면서도 “상대팀 주자들이 도루를 쉽게 시도하지 못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후한 점수를 줬다. 실제 부상 이전까지 최승환의 도루저지율은 무려 0.538이었다. 같은 팀 용덕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의 도루저지율’. 칭찬일색인 주변 반응에 그는 “요즘 부상 여파인지 순발력이 예전 같지 않다. 오히려 투수들에게 ‘잘 막아 달라’며 부탁하고 있다”고 멋쩍게 웃었다.

○타자 잡아내는 재미 쏠쏠… 외야수에서 포수로 ‘변신’

말은 이렇게 해도 그라운드 위에서 최승환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승부근성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지금도 5월 5일부터 잠실에서 열린 LG와의 3연전에서 연패한 걸 떠올리며 “그때 잘 하려고 무리하다가 졌다. 3일 내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릴 정도다. 이토록 경기 하나하나에 목숨을 거는 건 지금 잡은 기회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아서다. 둔촌초등학교 4학년 때 최승환은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다”며 부모님을 사흘 밤낮으로 졸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직업이 될 줄은 몰랐지만 야구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좋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포수를 할 생각도 없었다. 학창시절을 통틀어 포수 경험은 3년뿐이었다. 2000년 LG에 입단하기 전까지는 외야수였다. 게다가 대학교 3학년 때까지 몸무게는 82kg. 포수로서는 왜소했다. 그러나 딱 1년 뒤 체중이 무려 8kg나 늘었다. 그때부터 최승환의 포수 인생이 시작됐다. “LG에 입단했는데 서효인 (배터리)코치가 한번 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투수나 타자처럼 눈에 띄는 포지션은 아니지만 선발부터 마무리까지 투수들과 사인을 주고받으며 타자 잡아내는 재미가 쏠쏠해서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고… 두산 트레이드 ‘반전 서막’

최승환은 포수로서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했지만 기량을 발휘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LG에 몸담았던 6년(2001-2002년 상무) 동안 1군 출장은 불과 78경기. 팀 안방은 이미 연세대 선배인 조인성이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명생활에 서서히 지쳐갈 무렵,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왔다. 2007년 6월 15일 잠실 KIA전에서 슬라이딩을 하다가 좌측 무릎 부상을 입었고,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8개월간의 재활을 거쳐 팀으로 복귀했지만 LG는 최승환을 대신해 은퇴했던 김정민을 불러올린 상태였다. 최승환은 다시 2군행. 하지만 2군에서도 신인 김태군이 무럭무럭 크고 있었다.

“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어요. 위로는 조인성, 김정민 선배가 있고, 밑으로는 태군이가 크고. 제가 LG에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몇 개월 동안 방황했고, 주변에는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하고 다녔어요.”

하지만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죽으란 법은 없었다’. 2008년 6월 이성열과 함께 두산으로 트레이드가 결정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승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대사건’이었다.

“두산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갑자기 속에서 승부근성이 솟구치더라고요. 지인들이 ‘야구 그만둔다며?’라고 놀려도 ‘내가 언제?’라면서 시침을 뗐어요. 불과 며칠 전까지 모든 걸 포기하겠다며 죽을상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죠?”

○치열한 주전싸움 승리… 마침내 두산 안방마님

두산에 둥지를 튼 최승환은 “마지막 기회이니 죽기 살기로 해보자”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두산에서도 주전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대학 1년 후배인 채상병은 이미 주전을 꿰차고 있었다. 백업이지만 용덕한, 김진수도 실력이 쟁쟁했다. 최승환은 “지난해 동계훈련이 한국시리즈보다 더 치열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의 선택은 최승환이었다. 좋은 어깨와 잠재력을 인정받아 그는 2009년 두산의 안방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생애 첫 선발인데 떨리지 않냐’고들 묻는데 전 재미있어요. 지난해 한국시리즈에 나갔을 때도 긴장되기보다 재미있던데요. 아무래도 체질인 것 같아. 하하.”

최승환은 그동안 뛰지 못한 한을 푸는 듯 시즌 초반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볐다. 그러나 잘 풀리는 듯한 그의 인생에 또 다시 브레이크가 걸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속력으로 파고드는 삼성 강봉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부딪친 순간, 한번 다쳤던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꼈다. “시즌 오프(Off)구나” 싶었다.

병원 진단 결과 전치 6주. 예상보다 큰 부상은 아니라 안심했지만 불안했다. 재활 때문이 아니었다. 자리를 비워도 금세 공백을 메우는 두산의 두꺼운 선수층 때문이었다.

“두산이라는 팀이 이래서 무서워요. 주춤하면 밀리거든요. TV로 경기를 보는데 (용)덕한이가 너∼무 잘 하는 거예요. 다시 승부근성이 욱…. 제 인생에 승부근성을 자극하는 일은 왜 이렇게 많은지.”

○행복한 예비 아빠 “10년은 더 뛰어야죠”

최승환은 부상이 완쾌하기도 전에 조급하게 몸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어렵사리 잡은 기회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올라가도 (용)덕한이 때문에 경기에 못나갈 것 같더라고요. 너무 앞만 보고 달려서 쉬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럴 바에는 몸을 완벽하게 만든 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최승환은 무사히 재활을 마치고 5일 잠실 LG전부터 다시 선발출장중이다. 그의 복귀가 가장 기쁜 이는 아내 정영경씨. 최승환도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9월에 태어날 예정인 아들 ‘축복이’를 위해서 올 시즌 주전자리를 확실히 꿰차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내가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임신중인데 저까지 다쳐서…. 아이요? 좋죠. 아직 실감은 안 나는데 의사 선생님이 장동건 닮았다고 하대요. 하하.”

‘행복한 예비 아빠’ 최승환에게 올 시즌 목표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없어졌다”였다. ‘부상 없이 한 시즌, 선발 100경기 출장’이 시즌 초반 목표였지만 둘 다 깨져버렸다. “아! 저 목표 있어요. 무조건,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다치는 거요. 올 시즌은 물론, 제 야구인생 평생의 목표예요. 10년 동안 웅크리고만 있었는데 지금 아프면 억울하죠. 앞으로 10년은 더 뛰어야 하는데…. 안 그래요?”

최승환은 평소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실내훈련장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에서는 남다른 비장함이 느껴졌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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