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범석]재탕…둔갑…씁쓸한 ‘디도스 백신 마케팅’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8분


“지금이 홍보하기에는 가장 좋을 때잖아요….” 지난주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으로 온 나라가 ‘비상’이던 어느 날,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USB메모리 개발 업체의 영업팀장이라 소개한 그는 “이번 디도스 공격을 막을 수 있는 USB 백신을 우리가 최초로 내놨다”고 말했다. 그가 밝힌 USB 백신은 USB에 백신 프로그램이 들어있어 컴퓨터에 연결하기만 하면 바로 바이러스 및 악성코드가 검사되는 형태다.

디도스 공격으로 ‘보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얘기들을 듣고 보니 씁쓸함이 앞섰다. 원래 이 회사는 신제품을 이달 말 내놓으려 했으나 미리 앞당겨 발매를 하게 됐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이 관계자는 “디도스 공격으로 관심이 집중된 지금이 판매 최적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USB 백신은 이미 3년 전 ‘안철수연구소’를 비롯해 ‘하우리’ 등의 보안업체들이 내놓은 것으로 이들 중 하우리의 USB 백신은 미국 공공기관에 납품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렇다고 프로그램 자체가 디도스 공격에 탁월한 성능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디도스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해 무료 배포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이때다 싶어 자사 제품을 잇달아 내놓는 업체들도 있다. 특히 디도스 공격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13일 이후 이런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실속’보다 ‘상술’이 앞서는 제품이 많다는 점.

한 보안업체는 ‘디도스 공격을 근절할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보도자료를 보냈다. 제목만 보면 마치 이번 디도스 공격을 계기로 개발진이 연구해 제품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제품은 이미 지난해 공개된 제품이다. 패키지와 홍보문구만 바꿔 마치 새로운 백신 프로그램인 것처럼 ‘화장’을 한 것이다.

이번 디도스 공격은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가 사이버 보안에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로 인해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내 보안업체들 및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들이 조명을 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때다 싶어 자사 제품 팔기에 급급한 일부 보안업체의 모습은 눈앞의 이득에 눈이 어두워 전체 보안업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한쪽에선 (악성코드) 막느라 정신없고, 또 다른 쪽에서는 (물건을) 파느라 정신없다”는 한 보안업체 대표의 탄식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김범석 산업부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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