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광대는 서로 다른 두 세계 이어주는 운반자”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광대극 전도사’ 엘라인 사이먼 내한
한국극단과 즉흥광대극 공동 제작

《얼마 전 고인이 된 독일의 세계적 안무가 피나 바우슈는 각국 도시를 돌며 발표한 ‘도시연작’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선보여 왔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엘라인 사이먼 연극학과장은

‘광대극의 피나 바우슈’라 할 만하다.

연기교육에 광대연기를 끌어들인 그는 2005년 클라운질라라는 광대극단을 창단한 뒤 세계 곳곳의 배우들과 즉흥광대극을 제작하고 있다.

클라운질라(Clownzilla)는 ‘clown(광대)’과 괴수의 대명사 ‘gozilla(고질라)’의 합성어.

그는 최근 한국의 ‘공연창작집단 뛰다’에서 활동하는 7명의 배우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광대극으로 제작하기 위해 내한했다.

13일 경기 의정부시 뛰다의 연습실에서 한국 배우들과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왜 광대극인가.

“연기교육의 하나로 20년 전부터 광대 연기에 주목했다. 처음엔 가면을 가지고 수업을 시작했다가 광대 분장의 힘을 깨달았다. 하얗게 분칠하고 광대코를 붙이는 것이 곧 가면이다. 그 작은 빨간 광대코 하나가 개별 배우들을 순식간에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신시킨다. 광대 연기는 가장 강력한 연기교육이다. 광대는 자발적이고 신속하고 자유로우며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다. 게다가 협력의 미덕을 잘 안다. 연기에 이 밖에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한가.”

―광대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광대의 본질은 무엇인가.

“음, 4시간짜리 강의를 요하는 질문이다.(웃음) 광대는 이성과 감성,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같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틈바구니에 존재한다. 광대는 웃음으로써 관객의 닫힌 마음을 연 뒤 그들이 그 두 세계를 넘나들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웃음을 통해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관객이 그 세계를 더 깊이 응시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웃음 뒤의 긴 침묵을 떠올려 보라. 그렇기에 광대는 트랜스포터(Transporter·운반자)다.”

―일반 연기와 광대 연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무릇 연기자라면 무대 위에서 성공을 꿈꾼다. 누가 무대 위에서 실패를 좋아하겠나. 그러나 광대는 실패(failure)를 해야 비로소 성공(success)할 수 있다. 실수를 통해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으면 관객을 심오한 세계로 끌고 들어갈 수가 없다.”

―어떤 작품을 발표했나.

“첫 작품은 ‘클라운질라: 어 러브 스토리’였다. 광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재주가 넘치는 똑똑한 광대(In Clown)와 재주가 젬병인 멍청한 광대(Out Clown)다. 첫 작품은 멍청한 광대 둘의 사랑을 그린 것이다. 두 번째 작품은 아기광대가 A∼Z의 알파벳 첫 자로 시작하는 각종 휴일을 생각해내며 신나는 놀이를 펼치는 ‘클라운질라: 휴일 광상곡’이었다. 지난해 세계 각국에서 온 21명의 배우와 3일간의 연습을 거쳐 발표한 ‘광대 행성’은 이탈리아에서 발표했다. 광대들만이 사는 행성이 폭발해 지구로 피난 온 광대들을 그렸다. 한 달 전엔 중국 베이징에서 사랑과 전쟁의 이야기를 접목한 ‘Ready, Set, Dead’란 작품을 발표했고 다음엔 루마니아 공연 일정이 잡혀 있다.”

―이번 한국에서 공연하는 ‘클라운 맥베스’는 어떤 내용인가.

“맥베스는 죽음과 배신, 복수 등 광대의 세계와 대척점에 놓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열 가지 비극적 요소를 추출한 뒤 즉흥적 광대극으로 펼쳐내는 것이다. 뛰다의 상임연출가 배요섭 씨가 제안한 것인데 극단적 세계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광대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작품의 대략적 개요만 갖고 3∼5일간 광대 역을 맡을 배우들을 관찰한 뒤 배역과 움직임을 창조해낸다. 뛰다의 배우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공동작업한 배우 중 최고로 훈련이 잘돼 있어 훌륭한 작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클라운질라와 뛰다가 공동 제작하는 비언어 즉흥광대극 ‘클라운 맥베스’는 18일 오후 3시와 6시 두 차례 ‘뛰다’의 연습실에서 첫 공연 된다. 031-853-488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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