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준법 여든까지]“국회법 만들자” 46일간 30차례 본회의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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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제헌절… 국회사무처 공개 ‘한글로 풀어 쓴 제헌국회 회의록’ 살펴보니
법안심사 3독회는 기본
질의응답-축조심의 거쳐
“출두라는 말 일본냄새 난다”
표결 통해 ‘출석’으로 고쳐

“‘출두’라는 말은 일본 냄새가 납니다. 이 말을 ‘출석’이라고 고치는 것이 어떨까요?”

1948년 7월 12일 제헌국회 28차 본회의가 열린 서울 종로구 세종로 중앙청 회의실. 이날 헌법안을 놓고 세 번째 낭독 심사를 했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나용균 의원이 이승만 국회의장에게 헌법안 43조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해 증인 출두를 요구할 수 있다’는 대목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어 몇몇 의원이 재청했다. 이 의장은 “‘출두’라는 말이 왜놈 냄새가 난답니다”라면서 표결에 부쳤다. 정원 198명 가운데 재석 171명, 찬성 133명으로 나 의원의 지적이 받아들여졌다. 이 의장은 기권한 38명의 의원에게 “다음엔 기권 마세요”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국회사무처는 61주년 제헌절을 맞아 한글로 풀어쓴 제헌국회 회의록을 공개했다. 한자로 작성한 제헌국회 회의록을 지난해부터 한글 문서로 바꿔온 작업의 첫 성과물이다. 제헌국회 회의록은 ‘의정사의 보물’이지만 조사와 순우리말을 제외한 발언 대부분이 한자인 데다 이미지파일로 돼 있어 보기가 쉽지 않다.

제헌국회 회의록에는 꼬장꼬장하면서도 소탈한 제헌의원의 면모가 그대로 담겨 있다. 1948년 6월 3일 4차 본회의에선 이 의장이 국회 개원식에서 축사를 한 미 군정청 하지 준장에게 감사 편지를 하기로 교섭위원 간에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에 의원들은 “우리 일반이 원하지 않은 감사의 뜻이 있다면 우리 약속과 다르니 내용을 읽어 달라”고 잇따라 요청했다. 법안 심사도 본회의에서 세 차례나 낭독 심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질의응답은 물론 조항 하나하나를 살피는 축조심의를 하는 것이 통례일 만큼 예사로 넘기지 않았다. 헌법과 국회법 제정을 위해 개원 직후부터 같은 해 7월 15일까지 한 달 반 동안 30차례나 본회의를 열면서 지방의원들의 단체 숙소 문제가 논의되기도 했다. 1948년 6월 16일 12차 본회의에서 연락부의 김상돈 의원은 “많은 곳을 다녀봤는데 하루에 500원까지 말하는 듯하다. 시가에 비해 별로 비싸지 않으나 우리 형편에 도저히 할 수 없다”며 “싼 한 군데가 있다고 해 조사 가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지금까지 한글로 풀이된 제헌국회 회의록은 1회기 30차의 기록으로 아직 2∼6회기 271차의 기록이 남아 있다. 예산이 부족해 별도의 전문인력 없이 전직 속기사와 한자에 능통한 자체 직원만으로 작업하다 보니 진행이 더디다. 국회사무처 이경식 의정기록1과장은 “제헌국회는 모범적인 의회운영의 전형으로 뽑히고 있어 현재 국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며 “2011년까지 한글텍스트 작업을 마치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제헌국회 회의록은 인터넷 국회회의록시스템(likms.assembly.go.kr/record/index.html)을 통해 볼 수 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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