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관들이 ‘멀어서 못 간다’는 위기관리대책회의

  • 입력 2009년 7월 15일 02시 59분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하는 위기관리대책회의가 출범한 지 1년이 됐지만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명색이 장관급 회의체인데도 차관을 대리 참석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년 11월 한승수 국무총리가 “국가 위기를 다루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반드시 장관들이 참석하라고 지시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같은 장관급이 주재하는 회의라 자존심이 상해 참석을 꺼린다거나, 심지어 과천까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참석을 기피하는 장관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판이니 충청남도에 세종시가 생겨 많은 부처가 옮아가면 정부 회의체 운영이 더 엉망이 되지 않을까.

내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이달 8일 회의에는 국무총리실장을 포함해 장관급 6명, 차관급 8명이 참석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차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내수 진작책의 일환으로 휴가철 국내 관광 유도 방안을 협의했지만 정작 주무장관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장애인용 관광버스 시승식에 가느라 불참했다. 올 상반기에 열린 15차례 회의에 장관의 평균 참석 횟수는 7.2회로 절반도 안 된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가 작년 7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위기관리대책회의로 바꾼 것은 국정 운영을 위기관리체제로 전환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고유가 문제가 계기가 됐지만, 작년 상반기의 ‘광우병 촛불시위’ 같은 사회 경제적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범정부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는 뜻도 있었다. 그러나 안건의 주무부처 장관이 빠져도 괜찮은 회의라면 구태여 장관급 회의체로 ‘위기관리대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7·7 디도스(분산서비스거부) 사이버테러’ 때 민간 백신업체들은 관련 정부기관 서너 곳에 매번 똑같은 내용을 따로 보고하느라 진이 빠졌다. 부처 간 체계적 공조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위기에 대응하는 각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지금이라도 점검해 정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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