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류길재]대북지원, 민간단체 활용을

  • 입력 2009년 7월 15일 02시 59분


유럽 순방 중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식량을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기술이나 여건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사실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대북 식량지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직접 지원보다는 농업 인프라 개선이나 농산물 품종 개량 사업에서부터 북한의 경제관료에게 시장체제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사업까지 다양하게 제안됐고 일부는 시행됐다.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비유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하고 이유도 간단하다. 북한이 경제정책이나 관리방식을 바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주체농법만 바꿔도 북한의 식량사정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것쯤은 중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개혁개방이야말로 북한이 스스로 자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 쉬운 명제를 북한 당국이 외면하는 이유는 북한의 정치체제를 흔들 수 있어서다. 대통령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초보적이지만 근본적인 고민을 갖고 북한 문제에 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언제부터인가 북한 문제는 기술공학적인 해법으로 접근하는 게 당연시됐다. 무슨 제안을 하면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과연 수용할지, 대화나 협상 그리고 교류가 이뤄지면 남북관계가 발전되고, 북한이 마음을 고쳐먹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주관적인 희망사항을 섞어 객관적인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풍토가 만연했다. 중요한 점은 북한이 주변국뿐만 아니라 같은 동포인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현실과 스스로 변화하려는 몸짓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고집을 정확하게 대면하고 이를 고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외부의 지원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투입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렇게 추측하게 만드는 북한의 행태가 문제다.

대통령의 발언은 대북정책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암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요구를 일삼는 북한을 상대로 우리 방식만을 고집하면 북한이 자급하려는 노력은커녕 더욱더 폐쇄의 동굴로 움츠리고, 그 사이 애꿎은 북녘 동포만 생존의 기로에서 허덕이며, 심지어 동포들이 우리를 원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자급의 방향으로 대북지원 정책을 재조정하되 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인도적인 지원은 시행해야 한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을 설득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시행되는 이때 인도적인 지원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미국도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지만 우리는 미국이 아니다.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 주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지원은 그 필요성이 더욱 크다.

국내외적으로 정치적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정부 차원의 식량지원은 국제공조의 틀에서 하되, 부담이 적은 민간단체를 통한 지원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우리 민간단체는 대북지원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다. 양안관계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민간단체를 통해 지원하면 비정부 차원의 통로를 유지하고 민간단체 역시 더욱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상대를 설득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책임 있는 민간단체에는 그만큼 정부 지원의 몫을 늘려주고, 동시에 정부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북한을 설득하는 대북 사절의 역할을 하게 할 수 있다. 대북경협에서도 북한의 자급 여건을 신장시킬 방안을 적극 검토해서 제안할 필요가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구체적인 행동 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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