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DNA, 미래를 연다]<4>건설사 외국인 엔지니어들

  • 입력 2009년 7월 15일 02시 59분


3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GS건설 본사 앞에 모인 다섯 명의 외국인 엔지니어. 이들은 “안전한 한국에서 근무하는 게 매우 만족스럽지만 아이 교육문제와 영어 소통은 아쉽다”고 말했다. 앞줄은 부부 엔지니어로 근무 중인 프라딥 아밀, 킬티 씨(인도). 뒷줄 왼쪽부터 오말 다난, 다윈 가할론(이상 필리핀), 리시 바그와트 씨(인도). 홍진환 기자
3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GS건설 본사 앞에 모인 다섯 명의 외국인 엔지니어. 이들은 “안전한 한국에서 근무하는 게 매우 만족스럽지만 아이 교육문제와 영어 소통은 아쉽다”고 말했다. 앞줄은 부부 엔지니어로 근무 중인 프라딥 아밀, 킬티 씨(인도). 뒷줄 왼쪽부터 오말 다난, 다윈 가할론(이상 필리핀), 리시 바그와트 씨(인도). 홍진환 기자
“밤길안전-복리후생 만족… 학비 싼 국제학교 더 생겼으면”

《GS건설에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인도 필리핀 러시아 등 14개 국가에서 온 외국인 엔지니어 52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이 많이 근무하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의 플랜트사업본부에서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자주 들린다. 다문화 시대를 맞아 GS건설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 해외 플랜트 사업 비중이 높은 건설사들은 3, 4년 전부터 해외의 우수한 엔지니어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국내에서 충원할 설계인력이 부족하거니와 외국의 엔지니어들은 해외의 다국적 기업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경우가 많아 글로벌 프로젝트인 플랜트 사업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 “한국은 아주 안전한 나라”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안전한 나라’를 물으면 싱가포르를 떠올린다. 그러나 GS건설에서 일하는 외국인 엔지니어들에게 안전한 나라는 한국이다. 2006년 1월부터 공정팀에서 근무하는 인도 출신의 킬티 씨(29)는 “여자 혼자 밤늦게 다녀도, 돈을 많이 갖고 다녀도 불안하지 않은 나라는 드물다”며 “미국 같은 선진국보다 한국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킬티 씨와 부부 엔지니어로 함께 근무 중인 남편 프라딥 아밀 씨(32)도 한국의 장점으로 높은 치안 수준을 꼽았다.

회사가 외국인 엔지니어들에게 제공하는 각종 복리후생도 이들이 한국 근무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국내 직원의 80∼85% 수준인 임금 외에 입출국 및 휴가 때 가족 모두에게 본국 왕복 항공권을 제공한다. 사택으로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오피스텔도 지원된다.

SK건설에도 러시아 미국 중국 태국 등의 외국인 엔지니어 45명이 근무한다. SK건설은 한국 음식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외국인 직원을 위해 현지 음식 전문점과 계약해 점심 도시락을 배달시켜주고 있다. 윤인섭 GS건설 글로벌인력지원팀 과장은 “해외 업체와 경쟁하려면 외국인들과 부닥쳐야 하는데 본사에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직원들의 글로벌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 “교육과 영어는 아쉬워”

외국인 엔지니어들의 한국 생활 만족도는 높은 편이지만 ‘다문화 한국’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 아쉬운 점으로는 아이 교육문제와 영어 소통능력을 꼽았다. 열두 살짜리 자녀를 둔 인도 출신의 리시 바그와트 씨(40)는 “한국이 진정한 다문화 국가로 발전하려면 외국인을 위한 국제학교를 더 많이 설립하거나 공립학교에서도 영어가 잘 통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공립학교에 보내고 싶어도 영어가 안 통해 국제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는데 국제학교 수가 워낙 적고 학비도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이는 사택이 있는 일산에서 의정부국제학교로 다니고 있다. 일산에서 먼 의정부까지 보내는 이유는 이곳의 국제학교가 다른 곳보다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필리핀 출신의 다윈 가할론 씨(32)도 가족과 함께 살다가 아이가 학교 갈 나이가 되자 가족만 먼저 필리핀으로 보냈다.

이들은 회사 안에서 동료들과 대화할 때는 소통의 불편함을 거의 못 느끼지만 회사 밖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불편하다고 말한다. 킬티 씨는 “3년 전보다 영어를 쓰는 사람이 늘어나 다문화 서울로서의 발전을 느끼지만 병원, 약국에서 영어가 안 통해 난감한 적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화이트칼라 외국인 외에 생산직으로 근무하는 블루칼라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필리핀 출신의 오말 다난 씨(27)는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비자를 연장하는 게 매우 까다로워서 불법 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며 “한국이 진정한 다문화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한국 생활 만족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 “다문화 기업 더 늘어나야”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미국 소수인종의 영향력 확대’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유입에 적극적인 정책을 편 국가는 상대적으로 고(高)성장을 유지한 반면 외국인 유입에 소극적인 국가는 저(底)성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1995∼2005년 외국인 일자리가 연평균 각각 26.8%, 13.1% 늘어나면서 전체 일자리는 각각 4.7%, 4.4% 증가했다. 반면 총노동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0.2%에서 2005년 0.3%로 정체된 일본은 오랜 시간 동안 성장이 저조했다. 외국인 인력 유입은 시장임금 수준을 낮출 뿐 아니라 고용확대와 경제성장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화년 연구위원은 “향후 인구 감소가 우려되는 한국도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인력의 활용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며 “특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고급 외국인 인력의 유입이 경제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외국인 유입은 글로벌 시대에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다문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업들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헤드헌팅업체 커리어케어의 임종숙 컨설턴트는 “LG처럼 전사적으로 영어 사용을 필수화하는 등 다문화 기업으로 가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며 “글로벌 문화가 스며든 다문화 기업에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우수한 해외 인재가 모여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서울 금융허브 도약 우리도 한몫”▼

증권사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고 글로벌 경제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증권사에 근무하는 외국인도 증가하는 추세다. 삼성증권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국내 주요 10개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은 14일 현재 130명.

삼성증권에는 중국 대만 캐나다 등에서 온 외국인 24명이 리서치센터, 투자은행(IB)사업본부 등에서 근무 중이다. 대우증권에는 미국 캐나다 중국 홍콩 호주 뉴질랜드 등 6개 국가 출신 외국인 직원 23명이 해외사업부, 리서치센터, IB 등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증권사의 고급 인력이 모인 리서치센터에서는 중국인 애널리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중국 경제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각 증권사에서 중국 관련 리서치를 담당할 중국인 애널리스트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기 때문이다.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의 마야오쿤(馬燿坤) 책임연구원은 한국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를 모두 마친 인재로 중국 증권시장을 비롯해 전반적인 중국 경제 및 산업 분석 작업을 맡고 있다. 그는 “한국은 이미 상당히 글로벌화되면서 외국인이 일하기에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처음에 비자를 받을 때 심사 절차가 약간 복잡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금융허브경쟁력 제고방안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이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요인으로 해외인력 유입이 꼽혔다. 자본시장연구원과 서울시가 서울 도쿄(東京) 마닐라 뭄바이 방콕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시드니 싱가포르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타이베이 홍콩 등 13개 도시의 금융허브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서울의 해외인력 유입 비중은 1위인 싱가포르(100%)의 51.60%로 13개 도시 가운데 최하위였다. 마 연구원은 “외국인이 많이 선호하는 홍콩 싱가포르 등의 국가를 벤치마킹해 외국인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면 해외의 우수한 금융인력이 한국으로 더 몰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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