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지정 ‘눈칫밥’

  • 입력 2009년 7월 14일 02시 56분


토끼섬 해안 절벽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려는 인천 옹진군 굴업도의 토끼섬 해식대(소금 바람에 침식된 해안 절벽). 절벽 안쪽에 국내 유일의 대형 웅덩이인 ‘해식와’가 형성돼 있다. 사진 제공 문화재청
토끼섬 해안 절벽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려는 인천 옹진군 굴업도의 토끼섬 해식대(소금 바람에 침식된 해안 절벽). 절벽 안쪽에 국내 유일의 대형 웅덩이인 ‘해식와’가 형성돼 있다. 사진 제공 문화재청
굴업도 토끼섬 지정 추진에 옹진군, 개발 못할까 “반대”

세계유산 올리려는 강화 갯벌, 郡 “영향 조사부터” 비협조

‘천연기념물이나 세계자연유산이 지역 개발의 걸림돌?’

자연환경을 보전하려는 문화재청의 움직임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제동을 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연보호구역에서의 규제 장치가 건축 행위에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지자체장들이 주민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94년 핵 폐기장 후보지로 지정됐다가 백지화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던 인천 앞바다의 외딴섬 굴업도(옹진군 덕적면)가 요즘 천연기념물 지정 문제로 또다시 들썩거리고 있다. 한 대기업 계열사가 이 섬을 모두 사들여 골프장과 호텔, 해양리조트, 마리나, 워터파크 등 대규모 휴양관광단지를 2013년까지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이 본격화되자 환경단체가 지난해부터 지질 및 식생 전문가 조사단을 구성해 5차례 굴업도 답사를 벌여 희귀 동식물과 지질구조를 찾아냈다. 면적 1.71km², 해안선 길이 12km에 불과한 작은 섬에서 전 세계에 1만 마리 정도만 남아 있는 멸종위기종 검은머리물떼새가 발견됐고 천연기념물인 황새, 먹구렁이도 눈에 띄었다.

또 소금과 파도에 침식된 해안 절벽은 크기와 형태 면에서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천혜의 환경인 것으로 조사됐다. 굴업도해수욕장 주변에는 파도로 침식된 절벽인 파식대와 소금바람(염풍)에 침식된 절벽인 해식대가 길이 50∼100m, 높이 5∼10m 규모로 형성돼 있다. 본 섬에서 약간 떨어진 토끼섬에서는 이 같은 해안절벽 안쪽에 길이 120m, 깊이 5m로 움푹 파인 웅덩이인 ‘해식와(海蝕窪)’도 있다. 문화재청의 현지조사 결과 이 웅덩이는 국내 유일의 대형 해식와인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감정위원의 보고를 토대로 토끼섬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려 하고 있으나 옹진군이 반대하고 있다. 토지대장과 주민 의견서 등 기초 자료를 넘겨주지 않고 있어 천연기념물 지정 절차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문화재를 풍부히 지니고 있는 인천 강화도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문화재청이 갯벌로는 국내 유일의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강화 서남단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려 하지만 강화군이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 이곳은 희귀종인 저어새가 머무르는 해양생태계의 보고로 세계 3대 갯벌로 평가된다.

인천시와 강화군은 이곳과 가까운 해안과 석모도, 교동도를 제방으로 연결해 2015년경부터 조력발전소를 가동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훌륭한 자연경관이어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하고 싶지만 지자체가 반대하면 등재 신청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덕수 강화군수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면 갯벌 주변의 주민 생활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면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마찰에 대해 지자체가 천연기념물 지정에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두무진, 콩돌해안 등 4개의 천연기념물을 보유하고 있는 옹진군 백령도에서는 천연기념물보다 군사보호구역에 따른 규제 때문에 건축 행위를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백령면사무소 건축담당 실무자는 “최근 두무진과 콩돌해안 주변에 다가구 민박 등 2건의 건축허가 신청이 있었다”며 “천연기념물 규정에 걸리지 않는데도 군부대와의 협의 절차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경남 고성군의 공룡 화석 발자취는 천연기념물을 관광자원화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1억여 년 전인 중생대부터 형성된 4283족의 공룡발자국이 역사문화유적지로 자리 잡았고, 공룡엑스포까지 개최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천연기념물이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더라도 문화재 훼손 우려가 없다는 감정이 내려지면 얼마든지 건축 행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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