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지 22년… 갈수록 커지는 ‘앤디 워홀’

  • 입력 2009년 7월 14일 02시 56분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 대형 입간판 앞에 선 미국 앤디워홀 미술관 토마스 소콜로프스키 관장. 파리=고미석 기자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 대형 입간판 앞에 선 미국 앤디워홀 미술관 토마스 소콜로프스키 관장. 파리=고미석 기자
팝아트 선구자 파리 회고전
연말엔 서울서도 감상 기회

메릴린 먼로, 재클린 케네디, 빌리 브란트, 이브 생로랑, 믹 재거 그리고 마오쩌둥.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의 초상화에 등장한 인물이란 것.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 자리한 그랑 팔레에서 4개월의 대장정 끝에 13일(현지 시간) 막 내린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에서 이들의 초상화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국립박물관협회가 엄선한 전시만 여는 그랑 팔레의 전시답게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은 인물화를 집중 조명한 최초의 대규모 전시란 점에서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주목받았다.

회고전 성격의 이번 전시엔 자화상과 1962∼86년 완성한 실크스크린 초상화들, ‘스크린테스트’ ‘재난’ ‘마오’ 시리즈 등 총 250점이 출품됐다. 이 중 상당수는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앤디워홀 미술관의 소장품. 폐막을 앞두고 전시장을 찾은 앤디워홀 미술관 토마스 소콜로프스키 관장은 “세계 어디서든 워홀의 전시가 열리면 폭발적 호응을 얻는다”며 “최종 집계는 아니지만 이번 전시도 40만 명 이상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예술은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 믿은 앤디 워홀. 그는 피츠버그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일찌감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시대변화를 인식한 그는 중세화가들이 과일을 정물로 그렸다면 현대의 일상에서 우리가 보고 먹는 것은 왜 예술의 대상이 되면 안 되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깡통과 콜라병 같은 상품과 광고, 미디어 등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을 제작해 20세기 미술 거장의 대열에 올랐다.

이번 전시는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벽을 허물면서 팝 아트의 혁명을 이끈 앤디 워홀이 사후에도 왜 존재감이 날로 커가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앤디 워홀이 스무 살 때 그린 코를 후비는 자화상으로 시작된 전시는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정치 사회 경제 문화계에서 활동한 현대의 우상을 담은 초상화로 이어졌다.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엘리자베스 테일러까지, 요제프 보이스부터 장미셸 바스키아까지, 프란츠 카프카부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을 그려낸 초상화가답게 전시장은 그야말로 20세기 후반의 현대사를 압축한 듯한 풍경이었다.

전시장 곳곳은 그가 디자인한 벽지 등으로 치장됐고, 그가 제작한 비디오 작품과 잡지 표지 등을 선보여 앤디 워홀의 다재다능함을 엿볼 수 있었다. 모네가 한낮부터 해질녘까지 여러 시간대의 수련을 그렸듯, 그가 아파트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아침부터 밤까지 맨해튼 풍경을 찍은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소콜로프스키 관장은 “이번 전시는 초상화를 중심으로 모았지만 앤디 워홀의 위대한 매력은 어떤 주제로든 전시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 그가 손대지 않은 주제나 소재는 없다는 점”이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기 시대를 이해했던 것처럼 앤디 워홀은 20세기 후반 동시대인을 자기식대로 이해하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한 작가”라고 설명했다.

전기의자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1960년대 미국의 사회적 이슈였던 사형제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내며 아기의 모습이 비친 해골그림을 보면 죽음이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긍정적 세계관도 읽을 수 있다. 가난하게 태어나 평생 명성과 돈을 추구했고,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작품에 반영했던 앤디 워홀. 20세기를 비추는 거울 같은 그의 작품들은 12월경 한국을 찾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파리=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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