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주인기]기부문화 밑거름은 회계 투명성

  • 입력 2009년 7월 14일 02시 56분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하에서는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자의 탐욕에 의해 결국 중산층은 붕괴되고 오직 부유층과 빈민층만이 남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고 예견했다. 이런 자본주의는 무너져야 하며 다음에는 공산주의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공산주의는 과거 50년의 실험 과정에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산수단을 쟁취한 자의 도덕적 해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자본주의는 변화에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는 찰스 다윈의 말처럼 그동안 진화를 계속하며 살아남았다.

공정경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기득권자의 부당한 이익 추구를 제한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사회복지 정책의 지속적인 추구로 이른바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서로를 인정하는 사회적인 합의를 추진했다. 이런 제도적인 진화만으로는 자본주의가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현상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이른바 있는 자들이, 성공한 자들이 자발적으로 나눔의 문화를 실천해서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자기 재산의 80%인 370억 달러를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워런 버핏은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자녀들에게 재산을 남길 생각은 전혀 없다” “내 자식들은 능력중심사회에서 이미 유리한 출발을 했다” “우리는 막대한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해 경쟁사회의 공평함을 어지럽히기보다 이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핏이나 자기 재산의 95%를 기부하겠다는 빌 게이츠의 입장에서는 기부문화는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발전하게 하는 비타민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많은 독지가가 사회에 기부를 했다. 특히 없는 살림에 고생하며 평생 아껴 모은 돈을 아낌없이 사회에 기부한 이야기는 각박한 세상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곤 했다. 이런 독지가만으로는 기부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고 말할 수 없다.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재작년 근로소득이 있는 개인에 의한 기부금 총액은 4조 원을 조금 넘는 것으로 근로 소득자의 약 26%가 과세소득금액의 약 1.3%를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에는 근로소득자의 85%가 기부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부는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이 미치는 영향력으로 볼 때 분명 사회 전반으로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부문화의 씨는 그동안 우리 사회 속에서 잘 배양돼 왔음이 사실이다. 지난달 ‘한국가이드스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 30대 응답자의 대부분이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들은 기부의사 결정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사업의 목적과 기부금 사용의 투명성이라고 했다.

기부문화의 씨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는 사회 공익단체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가 중요하다. 회계투명성 확보를 통한 사회적 신뢰 없이는 기부문화의 꽃은 제대로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금년 4월부터 실시하는 자산규모 10억 원 이상 공익법인의 국세청사이트 공시의무는 시의적절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부금을 사용하는 모든 사회 공익단체의 회계자료를 등록시키고 이들의 투명성을 관리하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또한 공익단체에 알맞은 회계기준을 만들고 회계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실무자들에게 회계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모처럼 일어나기 시작한 기부문화를 제대로 꽃피우려면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정부의 확고한 정책적인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

주인기 연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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