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희 US여자오픈, 짜릿한 역전 우승

  • 입력 2009년 7월 13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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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US여자오픈을 관장하는 신(神)이 있다면 분명 한국사람 일 것 같다.

지은희(23·휠라코리아)가 13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베슬리헴의 사우컨밸리 골프장 올드코스(파71·6740야드)에서 열린 미 LPGA 투어 US여자오픈 마지막 날 18번홀(파4)에서 6m짜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선두에 2타차로 뒤진 채 4라운드를 맞이한 지은희가 초반 실망과 좌절, 우승 포기의 위기를 넘기며 따낸 우승이었다.

1998년 박세리의 맨발 투혼, 2005년 김주연의 18번 홀 벙커 샷, 지난해 박인비의 최연소 우승 등 한국과 인연이 깊었던 US오픈이 캔디 쿵(대만), 크리스티 커(미국)를 빼고 지은희를 선택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2위로 챔피언 조에서 출발한 지은희는 초반 흔들렸다.

주의해야 할 승부홀로 예상됐던 2번홀(파4), 4번홀(파3), 7번홀(파4)을 피해가지 못하고 보기 3개를 기록했다. 6번홀(파5)과 8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만회했지만 결국 1타를 잃으며 전반 라운드를 마쳤다.

베테랑 커도 좋지 못했다. 전반에 2타를 잃으며 지은희를 완전히 뿌리치지 못했다. 설상가상. 10번홀(파4)에서 지은희는 더블보기를 기록했다.

티샷과 두 번째 샷이 잇따라 벙커에 빠졌다. 세 번째 샷은 높은 벙커를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그린에지에 걸렸다.

지은희는 네 번째 어프로치 샷마저 홀에 붙이지 못했다.

압박감이 심한 상황에서는 가장 부담이 된다는 1.5m짜리 보기 퍼트마저 홀을 외면하면서 한꺼번에 2타를 잃었다. 순식간에 선두 크리스티 커와 3타 차이로 벌어지면서, 메이저 우승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캔디 쿵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와 커와 공동 선두가 됐다.

좌절 속에서 더욱 빛나는 한국 골프의 전통은 이때부터 나왔다.

13번홀(파4). 북한강에서 갈고 닦은 아이언 샷을 홀 50㎝ 옆에 붙여 버디를 낚은 지은희는 14번홀(파4)에서 20m짜리 버디 퍼트를 마술처럼 홀에 떨어뜨렸다. 단숨에 2타를 줄여 공동 선두 그룹(1 오버파)에 합류했다.

쿵이 더 이상 타수를 줄이지 못하면서 1오버파 285타로 먼저 홀아웃.

이제 남은 것은 지은희와 커의 승부였다. 커는 불독처럼 물고 늘어지는 지은희가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16번홀(파4)에서 1.2m짜리 파 퍼트를 실수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16번홀과 17번홀(파3)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한 지은희는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지 못하면 쿵과 연장 승부를 펼쳐야 했다.

캔디 쿵은 연장에 대비하며 연습그린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운명의 18번 홀. 티샷을 페어웨이에 적중시킨 지은희는 167야드를 남기고 친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렸다. 홀과의 거리는 6m, 오른쪽으로 휘는 까다로운 내리막 퍼트였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볼은 퍼터를 떠났다.

내리막을 탄 볼은 자석처럼 그대로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US오픈 여신이 쿵(1오버파 285타)을 1타차(이븐파 284타)로 따돌리고 메이저 우승컵을 지은희에게 안겨주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들리는 갤러리의 함성 소리에 놀란 쿵은 잠시 어리둥절하다 상황을 파악하고 철수했다.

한국 골프역사에 남을 이 퍼트 하나로 지은희는 우승 상금 58만5000 달러와 함께 소속사 휠라코리아가 주는 보너스 3억8000만원을 챙겼다. LPGA투어 상금 랭킹도 25위에서 5위(83만 2907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지은희 덕에 한국 여자선수들은 3주 연속 미 LPGA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시즌 6승째를 거뒀다. US오픈에서도 통산 4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한편, 김인경(21·하나금융)도 한 때 공동 선두까지 올라갔지만 마지막 홀에서 1타를 잃으며 커와 함께 3위(2오버파 286타)에 머물렀다.

최나연(22.SK텔레콤)과 배경은(25), 박희영(22.하나금융)이 공동 9위(5오버파 289타)에 오르는 등 한국 선수 5명이 톱10에 진입했다.

지난 달 US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에서 우승한 송민영(20)은 12위(6오버파 290타)를 기록하며 아마추어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냈고, 신지애(21·미래에셋)는 한국 무대에서 단짝이었던 안선주(22·하이마트)와 함께 공동 13위(7오버파 291타)에 올랐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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