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태원]40대 오바마의 ‘의회 소통법’

  • 입력 2009년 7월 13일 02시 59분


최근 미국 워싱턴 정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 개혁의 성공 여부다. 5000만 명 이상이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 가는 무보험자들은 최소 1000달러 이상을 내야 할 정도로 미국 건강보험 시스템은 심각하다. 1990년대 초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대통령 부인 힐러리가 직접 개혁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후보 시절부터 건강보험 시스템을 반드시 수술대에 올리겠다고 공언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저렴하면서도 수준 높은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새 시스템을 10월 중순 출범시킨다는 시간표까지 제시했다.

중앙정치 무대경험이라고는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3년이 고작인 40대 젊은 흑인 대통령의 도전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아 보인다. 그의 개혁작업은 짧게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8년 집권 동안 득세했던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이자, 길게는 정부 출범 이래 200년 이상 지탱해 온 기존 질서를 흔드는 일로까지 평가된다.

그러나 대업(大業)을 향한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묘책이 있어 보인다. 다름 아닌 의회 설득작업이다. 그의 ‘의회 다루기’는 ‘의회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36년 상원의원 경력을 자랑하는 조 바이든을 부통령으로 지명했고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 짐 메시나 부실장, 피트 라우스 선임고문 등 의회에서 잔뼈가 굵은 의회통 인사들을 백악관 요직에 배치한 것도 의회와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내각에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켄 살라사르 내무장관, 힐다 솔리스 노동장관, 레이 러후드 교통장관 등 의원 출신 장관이 즐비하다. 바이든 부통령과 실세 비서실장 이매뉴얼은 각각 상·하원에 있는 헬스클럽에 살다시피 하면서 그들의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대통령에게 전하거나 반대로 행정부의 고충을 토로하며 의원들을 설득하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의회 인사들과의 독대도 마다않고 중요한 행정부 인사 지명 때도 대통령이 직접 의원들에게 전화해 의중을 타진한다. 13일부터 청문회가 시작되는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지명 전에는 상원 법사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의사타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출신으로 76세인 찰스 그래슬리 상원의원은 “대법관 지명과 관련해 대통령 전화를 받은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라며 젊은 대통령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의회 설득을 넘어 압박할 필요가 있다 싶으면 거침없이 현장에 뛰어드는 방법으로 정면승부를 하는 것도 오바마 대통령의 특장이다. 의회가 경기부양법안 통과문제를 놓고 머뭇거리자 그는 대선유세를 연상케 하는 ‘타운홀 미팅’(주민과의 대화)을 열고 “미국 경제가 죽어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의회를 압박했다. 건강보험 개혁의 칼을 뽑아든 것도 대중 속에서였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못한다”며 재원 조달을 위한 재정부족을 걱정하는 여야 의원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난달 16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의회를 어떻게 다뤄 나가는지 알려 달라”고 물었다는 전언이다. 질문을 한 진의가 무엇이고 이 질문에 이 대통령은 뭐라고 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의회 다루기의 노하우를 물어야 할 사람은 이 대통령이 아니었을까.

지금 한국사회는 ‘소통 부족’이 화두이지만 무엇보다 청와대가 야당은 고사하고 여당 의원들과도 소통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책추진 과정에서 의회 설득이야말로 ‘소통’의 우선 과제임을 워싱턴 정가를 통해 느끼게 된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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