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속는 ‘가격의 심리학’

  • 입력 2009년 7월 1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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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전략
손목시계-와인 등 고급품 인식
○9의 법칙
끝자리 9붙여 “싸다” 착시노려

물건 싸게 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터. 하지만 아무리 싸게 샀다고 해도 과도하게 사면 후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여름 정기세일이 한창인 백화점은 물론 인터넷 쇼핑 사이트,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광고들 속에 숨어 있는 고도의 가격 전술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소비 진작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쓸데없는 ‘지름신의 강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몰라서 혹하고 알아도 어쩔 수 없이 속고 마는, 가격에 관련된 기업과 유통업체의 심리적인 전술을 모아봤다.

○ 비싸면 무조건 좋다?

2006년 국내에서 만든 저가 손목시계를 값비싼 해외 명품 시계라고 속여 부유층과 연예인을 대상으로 수천만 원에 판매한 이른바 ‘빈센트 앤 코’ 시계 사건을 기억하는가. 속아 넘어간 부유층 인사와 연예인들은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사실 비싸면 좋다고 느끼는 건 인간의 보편적 심리 중 하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이뤄진 한 실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와인을 놓고 병당 10만 원이라고 했을 때와 2만 원이라고 했을 때 즐거움에 반응하는 뇌의 기쁨 중추는 10만 원짜리 와인을 마셨을 때 더욱 활발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싼 와인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셈이다.

기업들이 고가 전략을 이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꽤 비싼 가격에도 ‘품질이 좋기 때문일 것’이라는 자기 암시와 함께 구입을 하기가 쉽다.

○ 하루에 1만 원, 1년이면 365만 원

외제 차 광고 중에 ‘월 39만 원’을 강조하는 광고가 있었다. 이 광고는 월 30만 원대에 외제 차를 탈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월 4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인 셈이다. 널리 알려진 이른바 ‘9의 법칙’을 이용한 전술이다. 요즘에는 9의 법칙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가격을 속인다는 인식이 있어 끝자리를 8만 원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8의 법칙’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또 리스 할부금 월 39만 원은 한 달 가격으로는 그리 비싸지 않아 보이지만 1년이면 468만 원, 3년이면 14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1년에 365만 원과 하루에 1만 원은 같은 가격이지만 소비자에게는 후자가 싸게 느껴지는 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 세일이면 일단 사고 본다?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하면 대부분의 사이트가 원래 가격에 X표나 중간 줄을 쳐놓고 바로 아래에 그보다 싼 가격에 판다고 표시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현재 가격이 원래 가격보다 싸기만 하면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하기가 쉬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사실은 원래 가격 또한 어떻게 책정된 가격인지 알 수가 없다. X표를 한 가격은 ‘앵커(anchor) 가격’이라고 부른다. 이 가격은 소비자들의 마음에 일정 수준의 가격을 각인시키기 때문에 이보다 싼 가격에는 무조건 반응하기가 쉬운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전술인 것이다.

이러한 가격 전술을 비록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속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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