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선완규]교양 있게 살기, 점점 더 힘든 세상

  • 입력 2009년 7월 11일 02시 59분


교양 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진다. 여러 해 동안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됐던 것과 상반되는 현상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과 대학원 등의 위기이자 인문학자의 위기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수를 채우지 못함으로써 야기된 인문학 관련 학과의 존폐 위기, 이에 따른 직업으로서 인문학자의 위기, 급변하는 시대에 인문학자의 현실적응력 위기가 인문학의 위기라는 추상적인 표현이 품은 구체적인 사실이다.

교양으로서 인문 교육에 대한 욕구는 보이지 않게 증가했다. 디지털 기술 합성 시대에 독서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고전(古典)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빈자의 인문학, 희망의 인문학, 최고경영자(CEO)의 인문학, 동서양 고전 강좌, 초등학생에서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신화 읽기의 확산, 고전과 대중을 연계하려는 출판사의 노력이 이를 증명한다.

근대사회가 만들어낸 인간 중심의 사회문화적 관계는 시민의 기본 자질로서 교양을 만들었다. 대학 교육 과정의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실력을 기른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지가 주안점이다.

그래서 일정 분야의 전문적 실력 양성과 함께 올바른 인생관과 보편적일 수 있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전인적인 자질을 배양하는 일을 강조했다.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은 교양에 대한 이미지이다. 우리는 이미 주어진 세계를 해석하거나 변혁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고, 철학 역사 문학이 그런 역할을 했다. 이미 있는 세상을 구성하는 여러 지식을 해석하고 변주하면서 그 지식의 변화에 집중했던 것이다.

창조의 시대 ‘예술적 교양’ 중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기술합성시대)는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하나의 주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다.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하지만 일상을 관찰하면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임은 확실해 보인다. 우리는 여러 개의 창조된 세상 속에 산다.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무의미한 디지털 세계, 나와 전혀 다른 탄생 경로를 타고 태어난 새로운 생명체, 생명의 탄생을 디자인하는 인간의 등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내 친구, 동료가 복제인간일 수 있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상상을 품는 것을 보면 분명 세계는 바뀌었고, 인간 역시 바뀌는 중이다. 세계의 해석에서 세계의 생성으로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회문화적인 흐름과 관찰에서 교양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의 교양을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관점으로 말이다. 문화가 부각되면서 세계는 사회적 관계에서 문화적 창조로 급격히 이동한다.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지식에서 제대로 된 것, 멋진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교양의 내용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것과 멋진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되고 멋지게 만들어진 것은 사람 관계에 득이 되고, 그 관계를 좋은 쪽으로 이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교양의 예술적 차원을 주목해야 한다. 잘 어울려서 사는 일과 함께 여러 분야에서 잘 만들면서 사는 일이 중요해졌다. 창조와 생산의 과정에는 창조하는 사람의 마음이 스며든다. 작품의 창조와 제품 생산의 기예를 익힌 사람이 예술적 능력을 가지고 제대로 되고 멋진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우리 시대의 화두는 진화학 유전학 생명공학 나노공학 등의 과학이라는 점이다.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는 상상이 기술로 현실화되는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물질에 대한 이해와 물질문명의 바른 이용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넘어, 지구를 넘어, 우주적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성찰이 가능하려면 과학에 대한 이해를 전제해야 한다.

‘나’를 알기 위해 과학 먼저 이해를

휴! 먹고사는 것도 벅찬데,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게다가 인문 예술 과학을 교양으로 습득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들릴 것 같다. 세상이 고도화되기 때문이다. 관심을 갖고 꾸준히 애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평생학습이라는 말처럼 잘 어울리는 낱말은 없을 것이다.

내가 일하는 곳이 인문학을 중심으로 책을 펴내는 출판사이다 보니, 이래저래 공부가 깊고 사유가 넓은 학자의 논문 강연 강의를 읽거나 들을 기회가 많다. 가끔은 이들과 일대일로 마주하여 사회의 여러 이슈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일과 후에는 예술사 철학사 등의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거나 문화예술 관련 교양 강의를 즐겨 듣는 편이다. 10여 년 동안 그런 활동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정말 귀한 이야기를 듣곤 한다. 오늘 이야기는 귀한 귀동냥의 산물이다.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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