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훈]李대통령께 두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 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글을 읽고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생활을 하다보니, 어느덧 필자는 책과 독서를 잣대로 사람을 이해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그의 서재나 사무실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는가를 통해서 그 사람의 관심, 취향, 목표 등을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필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매년 휴가철이 되면 미국의 출판계뿐 아니라 정치평론가, 언론인 사이에서 대통령이 여름 휴가지에 어떤 책을 싸들고 가는가가 초미의 화제로 거론되곤 한다. 대통령의 독서 리스트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향후 정국 추이를 점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임기 18개월째를 맞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무언가 새로운 전환을 꾀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그간 적지 않은 비평과 주문이 나왔다. 필자는 이 대통령이 이번 여름휴가 때 제일 먼저 챙겨야 할 책 두 권을 추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라는 재밌는 제목의 책이다. 클레이 서키라는 커뮤니케이션 학자가 지은 이 책의 원제는 ‘Here Comes Everybody’인데, 우리말로 옮긴 제목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인터넷 시대의 ‘소통’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e메일, 위키피디아, 블로그, 유튜브 등이 대중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주장한다. 조직과 공급 중심의 정형화된 패턴의 시대는 지나갔고 대중은 이제 여론형성, 정치행동에 있어서 각자의 관심, 이슈에 따라서 주체적으로 ‘쏠리고 들끓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키가 300여 쪽에 걸쳐서 역설하고 있는 얘기의 핵심은 결국 새로운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변화 수용하며 소통의 실마리를

이러한 서키의 주장은 현 정부가 안고 있는 고민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지난 18개월간 이 대통령이 잃은 것은 50%대에서 30%대로 낮아진 지지율만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웹카메라로 무장한 1인 블로거들을 물대포로 막으면서, 미네르바의 블로깅을 차단하면서 정부와 대통령은 소통의 의미와 파트너를 상실했다. 사이버 공간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빅브러더의 이미지가 강화되면서 대선 때 지지를 보냈던 수도권의 젊은 층은 등을 돌리고 중간층은 관망의 자세로 돌아서게 되었다.

1년여에 걸쳐 악화되어 온 소통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벤치마킹해 유튜브 토론회나 메신저 채팅을 몇 차례 시도한다고 해서 단번에 소통의 의미와 분위기가 되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사이버 공간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 현상 그 자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서 소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두 번째 추천도서는 도리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이다. 원제는 ‘Team of Rivals’였는데, 저자 본래의 뜻은 원제에 훨씬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에서 저자 굿윈은 미국이 내전을 치르고서도 하나의 국가로 남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링컨의 위대함이 포용의 리더십에서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원의원 선거에서 두 번 낙선한 끝에 가까스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던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약체 대통령과 정부를 예상했다. 게다가 링컨이 자신보다 화려한 공직경험과 전국적인 명성을 갖춘 경선과정의 라이벌들을 내각의 주요 자리에 앉혔을 때, 링컨 정부는 사공이 많은 배가 되리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후의 실제 역사는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한 대통령의 반열에 링컨을 올려놓았다.

필자가 무작정 포용만이 최고의 미덕이고 리더십의 요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경험과 현실적 맥락에서 포용의 리더십은 어떠한 것인가를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사실 이 대통령은 여당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새로운 실험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 치열한 당내 경선 이후에도 경선 라이벌이 당에 남아 현직 대통령과 협력과 경쟁을 벌이는 것은 우리 정당정치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실험이다. 현직 대통령과 경선 라이벌의 관계가 어떤 제도적 틀로 규정될 수도 없는 것이다.

관대함과 포용의 리더십 새겨야

결국 170석을 거느린 여당이 효과적인 여당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제도 개선이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굿윈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링컨이 관대함, 자신감을 통해서 경선 라이벌들의 협력과 충성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같은 미덕이 발휘될 때 우리 민주주의는 제도개혁의 수준을 넘어 정치문화의 업그레이드로 나아갈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 대통령의 임기 중반의 화두는 ‘이해를 통한 소통’과 ‘관대함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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