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인영]국내 사모펀드 ‘족쇄’ 풀자

  • 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2004년 12월 국내 최초의 토종 사모펀드(PEF)가 자본시장에 첫선을 보인 지 5년째다. 2005년 한 해 동안 14개 펀드가 4조 원이 넘는 출자약정을 맺으며 본격적인 국내 사모펀드 시장의 막을 올리더니 2009년 5월 현재 84개의 사모펀드가 약 16조 원에 이르는 출자 약정을 이끌어내는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최근의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토종 사모펀드가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몇몇 대형 사모펀드만이 간간이 세인의 귀를 의심하게 할 만큼 엄청난 가격에 경영권을 인수해 갈 뿐 눈앞의 구조조정 시장에선 이렇다 할 성과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글로벌 사모펀드는 차입매수(LBO) 위주의 기존 투자 형태에서 벗어나 성장을 위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대한 투자, 자본 확충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 부실채권 인수 및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의 부실자산 구조조정 투자 등으로 운용 대상을 확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 사모펀드는 경영권 투자 중심의 자산운용 영역만 고집할 수밖에 없어 경쟁력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토종 사모펀드가 스스로 구조조정의 심판대에 오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 않을지 염려스럽다.

글로벌 사모펀드와 토종 사모펀드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역설적이게도 사모펀드 육성 차원에서 도입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과거 간접투자자산 운용에 관한 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행법은 운용 대상을 경영권 참여 목적의 지분투자로 못 박고 있기 때문에 경영권을 인수하지 않는 한 국가경제의 근간이 되는 기업 경쟁력 강화에 토종 사모펀드들이 기여할 수단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실제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한 재벌그룹 계열 생명보험사도 펀드 운용에 법적 제약이 없는 외국계 사모펀드·헤지펀드와 자산 매각에 대한 논의를 우선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상황은 과거 금융위기 시절 칼라일, 뉴브리지 등 외국계 사모펀드에 금융회사를 매각한 뒤 헐값 매각 논란을 거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법보다는 정서로 움직이는 나라’라는 오명을 쓰며 비싼 대가를 치렀던 수모를 생각나게 한다.

과거에 경험한 위기보다 훨씬 크고 오래갈 것으로 예상되는 현재의 금융위기는 반드시 최고의 수익으로 보상될 것이라는 게 글로벌 사모펀드와 이들에 자금 운용을 맡긴 해외 연기금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최근 사모펀드 업계 비즈니스 모델의 대세는 과거와 같이 차입매수 등 화려한 금융기법에 의존한 수익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업에 대한 성장 자금 제공, 구조조정 자금 지원을 통한 자본 확충, 전략적 투자자의 인수금융 지원 및 부실채권 인수 지원 등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의 현실상 사모펀드를 선진국처럼 규제 없이 운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변화하는 투자 패러다임과 국가경제의 요구에 맞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투자 대상 및 기간에 대한 제약 등 지나친 법률적 장애물은 해소해야 한다. 2009년 4월 국회에서 발의된 기업재무안정 사모펀드 제도의 도입은 국내 사모펀드들엔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토종 사모펀드들이 구조조정에 발 벗고 나서서 뛰게 해 줄 때다. 규제의 논리를 벗어던지고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경제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한국경제와 함께 토종 사모펀드 업계가 제 역할을 찾고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인영 우리프라이빗에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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