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비정규직 누가 울리고 있나

  • 입력 2009년 7월 9일 22시 08분


비정규직보호법이 발효된 지 열흘이 됐다. 실업 대란을 우려했던 정부는 아직 정확한 해고 수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지원을 요구한다. 비정규직법 개정을 놓고 갈라졌던 세력이 이젠 자기 예측이 맞다며 싸운다. 정치인들은 대개 그렇지만 일자리를 잃고 생계 위협을 받는 비정규직보다 자신들의 명예를 더 중히 여기는 듯하다.

정부는 연간 비정규직 70만 명가량이 해고될 것이라 했고 야당은 30만 명 정도로 대란은 없을 것이라 했다. 해고 대란(大亂)이냐 소란(小亂)이냐를 놓고 싸워 누가 이기든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잃을 것만 있지, 얻을 것은 없다. 시간을 끌수록 거리로 내몰리는 비정규직이 늘어날 뿐이다.

돕는다며 훼방 놓는 민주당과 노동 귀족

노동부는 실상 파악을 위해 그제 긴급 조사를 벌였다. 5인 이상 사업체 51만8000개 중 1%가 약간 넘는 5695개 사업장을 조사해보니 495곳에서 3314명이 해고되고, 234곳에서 1326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대략 70%는 해고되고 30%는 정규직이 된다는 것이다. 많든 적든 해고가 진행 중이다. “해고 대란은 없지 않느냐”(정세균 민주당 대표)나 “많지 않을 것”(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이라는 말은 비정규직의 고통과 불안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언행이다.

3년 전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은 민주노총에 휘둘려 엉터리 비정규직보호법을 제정했다. 기간제와 파견제의 기간 제한을 당초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고 파견대상 업종을 줄인 탓에 고용유연성이 떨어진 기업들은 해고 외에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렵다. 해고 대란의 소지를 만든 것이다. 참여정부 스스로 “민노당이 법안 심의를 막는 동안 민주노총은 제출된 법안에 다양한 방법으로 흠집내기 전략을 구사했다”(비정규직 정책 보고서)고 토로할 정도였다. 정규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노총 등이 끼어들어 문제가 더 꼬이게 됐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경영자총연합회 김영배 부회장은 “그런 법을 만들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하고 정규직화하려는 기업은 11%밖에 안 된다고 했으나 열린우리당은 들은 척도 안했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 얘기만 들었어도 엉터리 비정규직보호법을 강행 제정해 오늘의 해고 대란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고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정치권에서 “비정규직 계약기간 만료로 해고되는 근로자는 매년 증가하나 총고용량은 유지되고 있다”(홍희덕 민노당 의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책임 회피다. 새 일자리를 찾느라 고생하는 실업자와 잦은 인력 교체로 숙련공을 구하지 못한 기업의 고충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대기업에서 보호받는 ‘강남’ 근로자보다 ‘변두리와 강북’ 근로자에게 먼저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강성 노조를 만든 대기업 근로자보다 비정규직 근로자와 실업자 그리고 하청업체 근로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정부는 왜 근본대책 추진 못하나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하고 정규직 전환도 늘리려면 정규직의 고용 및 해고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이는 세계적 추세다. 경영에 부담이 되는 정규직만은 더 늘릴 수 없다는 기업이 많은 것은 정규직 노조들이 철밥통 같기 때문이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인력을 줄일 수 있어야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고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채용을 확대할 수 있다.

미국은 정리해고를 쉽게 해주고 유럽은 어렵게 했다. 정리해고가 쉬운 나라의 실업률이 높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유럽의 실업률이 미국의 실업률보다 2, 3배 높았다.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도 미국이다. 유럽 고용주들은 불황이 왔을 때 인력을 줄이지 못해 회사가 망할까봐 정규직 신규채용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정은 더 경직적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귀족 노조의 눈치를 보는지 이런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그렇게 없는가.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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