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옥 감독님, 승리 지켜보셨나요”…눈물의 ‘빈손 헹가래’

  • 입력 2009년 7월 9일 03시 00분


“스승님 영전에 우승기를 바칩니다.” 8일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동의대 선수들이 나흘 전 세상을 떠난 조성옥 감독을 빈손으로 헹가래치며 울먹이고 있다. 부산고 감독 시절 추신수를 길러낸 조 감독은 4월 춘계리그에서 동의대를 정상에 올려놓은 뒤 간암이 발견돼 투병해 오다 4일 별세했다. 연합뉴스
“스승님 영전에 우승기를 바칩니다.” 8일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동의대 선수들이 나흘 전 세상을 떠난 조성옥 감독을 빈손으로 헹가래치며 울먹이고 있다. 부산고 감독 시절 추신수를 길러낸 조 감독은 4월 춘계리그에서 동의대를 정상에 올려놓은 뒤 간암이 발견돼 투병해 오다 4일 별세했다. 연합뉴스
우승의 환호성은 잠시였다. 선수들은 이상번 코치를 따라 마운드 주위로 모였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헹가래를 쳤다. 빈손이었다. 헹가래를 받을 주인공은 그라운드에 없었다.

“여기 감독님이 계신다고 생각하자. 가시는 길 잘 지켜 드렸다. 만족하실 거다.”

이 코치의 눈이 붉어졌다. 어느새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고 있던 선수들도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의 영원한, 조성옥 감독님, 아무 걱정일랑, 하지 마시고, 편안히 가십시오, 편안히 쉬십시오.”

하늘을 향해 목청껏 소리친 선수들은 모자를 앞에 놓고 무릎을 꿇었다. 눈을 감은 채 고인이 된 스승을 기렸다. 아쉽게 진 성균관대 선수들도 더그아웃 앞에 서서 묵념을 했다.

4일 별세한 고 조성옥 감독이 이끌던 동의대가 8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 결승전에서 성균관대를 2-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감독님 영전에 우승기를 바치겠다”던 제자들은 약속을 지켰다.

○ 감독님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

“오늘은 무조건 이길 겁니다. 이겨야 합니다.”

선발로는 4학년 문광은이 나섰다. 조 감독은 그가 2학년이던 2007년 4월에 사령탑을 맡았다. 동의대는 조 감독 부임 후 탄탄한 전력을 갖춰 나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문광은은 그 대회 결승에서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그때 제가 부진했어요. 감독님께 ‘내년에 우리가 결승에 오르면 꼭 선발로 뛰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믿어주마. 열심히 해봐라’고 하셨지요. 마지막 선물을 드린 것 같아 기쁩니다.”

문광은은 7이닝을 2안타 1실점(무자책)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대회 최우수선수도 그의 몫이었다. 경기를 지켜본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은 “문광은이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잘 던졌다”고 평가했다. 동의대는 2-0으로 앞선 8회 위기를 맞았다. 연속 실책으로 무사 1, 2루를 허용했다. 문광은의 뒤를 이어 등판한 3학년 윤지웅은 안타를 맞고 2루 주자에게 홈을 내줬지만 더는 실점하지 않았다. 최근 2개 대회에서 우승할 때 모두 최우수선수에 뽑혔던 윤지웅은 “감독님이 오신 뒤 팀 컬러가 바뀌었다. 나보다 먼저 동료를, 팀을 생각하게 됐다.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자신감을 심어주셨다”고 말했다.

○ “병문안 오지 마라… 알리지 마라”

이 코치는 지난해 겨울 조 감독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느꼈다. 몇 번이나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지만 조 감독은 바쁘다며 외면했다. 올 4월 춘계리그에서 우승한 뒤에야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간암 말기였다.

“그게 감독님이 마지막으로 벤치를 지킨 대회였죠. 선수들은 그 뒤 감독님을 뵙지 못했어요. 약한 모습 보이기 싫다고 병문안 오지 마라, 암이라는 것도 알리지 마라고 하셨죠.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꼭 우승해서 누워 계신 감독님을 벌떡 일어나시게 하자’고 했는데….”

조 감독은 떠났지만 동의대는 올 시즌 2관왕에 오르며 대학야구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동의대 선수단은 경기 광명시에 있는 전용 숙소에서 하루 더 묵은 뒤 9일 버스로 이동한다. 부산에 도착하기 전 조 감독의 유골이 안장된 경남 양산시 석계하늘공원에 들러 우승기를 바칠 예정이다.

평생 야구를 위해 살았던 조성옥 감독. 그는 하늘에서도 헹가래를 받고 우승기를 안은 행복한 감독이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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