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롯데 박정준 “군대 훈련수첩이 내 야구의 힘”

  • 입력 2009년 7월 8일 08시 15분


롯데 박정준 눈물나는 성공스토리

롯데 외야수 박정준(25)은 요즘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사직구장에서 좌익수 수비를 볼 때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고 실감한다. 한 타석만 못 쳐도 “쟤, 빼라”란 야유가 날아왔던 예전을 떠올리면 남몰래 짜릿함을 느낀다.

6일까지 타율 0.331(154타수 51안타) 5홈런 24타점. 주로 1-2번 테이블 세터로 등장하지만 출루율보다 장타율이 1할 이상이다. 2루타도 12개나 되고, 주자 있을 때 타율은 0.355에 달한다. 로이스터식 ‘공격야구’의 맞춤형이다.

그와 만났던 4일 SK전에서도 1번 겸 좌익수 출장이었다. 우투수가 나오면 무조건 선발이다. ‘수줍음이 많다’는 세간의 평가를 깨고 속 깊은 얘기를 나눠보니 그는 달변이었다. 경기직전이어서 시간이 제한됐는데도 조리 있게 할 말을 다했다.

경기 직전 다른 동료들이 덕아웃에 들어가 1회 수비 준비에 한창일 때, 혼자서 필드에 남아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그가 되뇌었던 “절박함”의 진정성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절박함 안고 나홀로 피나는 연습, 매일매일 훈련량 적다보니 강해져

○수첩이 바꿔놓은 야구인생

박정준은 2008년 11월 상무에서 제대, 롯데로 돌아왔다. 그는 “상무에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군대 가서 사람 됐고, 야구에 눈을 떴다’는 식의 진부한 스토리가 아니다.

오히려 군복무 2년간은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거의 실전에 기용되지 못했다. 희망이 안 보였기에 견디기 더 힘들었을 시간. 그는 혼자서 체력 훈련과 스윙 연습을 했다. 곁에서 지켜보고 관리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고독함을 버티게 해줬던 유일한 벗은 수첩이었다. 처음엔 단지 기록을 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무심코, 그날그날의 훈련량을 적어뒀는데 나날이 쌓이다보니 저절로 자기 관리가 됐다.

제대할 무렵엔 꽤 두꺼운 수첩 하나가 2년간 흘린 땀의 궤적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지금도 이 다이어리는 그의 야구인생 지침이다. 야구가 잘 안될 땐 이 수첩을 펼쳐보고 그 시절의 초심을 되새긴다.

○절박함의 힘

박정준은 계약금 2억1000만원을 받고 롯데에 입단했다. 그러나 2003년 2000만원인 연봉은 프로 7년차(상무 포함)가 되는 2009년 2600만원이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야구에 회의를 느낄 법할 상황.

여기서 박정준의 건강한 마인드가 인상적인데 하나는 절대로 “주변 탓”을 하지 않는 점, 또 하나는 “야구 말고 다른 생각을 안 한” 점이다.

“예전 감독님들이 기회를 주셨어요. 그런데 기회인 줄도 모르고 놓쳤던 제 잘못이죠. 지금까지 ‘이거(야구) 아니면 안 된다’란 생각으로 살았어요. 롯데에 외야 경쟁자가 많아도 ‘내가 할 것만 잘 하면 된다’는 기분이에요. 1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그것만이 목표입니다.” 그의 좌우명은 “내가 오늘 서는 1타석이 어제의 2군 선수들이 그토록 원했던 타석”이다.

테이블세터지만 장타율〉출루율, 7년만에 첫 홈런…“잔치 시작됐다”

○야구는 천생연분

마산 출신인 박정준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와의 첫 만남이 만화 같은데 방과 후 운동장을 걷던 중 야구공이 쪼르르 발 앞에 굴러왔다. 마침 훈련 중이던 야구부의 볼이 넘어왔다. 그쪽에다 볼을 힘껏 던져줬는데 그 어깨에 감독이 반해버렸다.

집에선 격렬하게 반대했다. 외동아들을 야구시킬 순 없다고 완강했다. 6학년 여름방학 무렵엔 야구를 못하게 과외선생을 붙여 놨다. 그러나 아들은 야구가 마냥 좋았다. 야구를 따라 경남중-고로 진학했다. 중2 때, 너무 힘들어서 잠시 야구를 관뒀지만 수업이 귀에 안 들어왔다. 다시 야구 곁으로 달려갔다. 경남고 2년 선배인 이대호가 현재 룸메이트다. 이대호에게서 타자의 마음가짐을 배운다.

올 시즌 야구를 잘 해서 여자친구 앞에서도 뿌듯해졌다. 2005년 소개팅으로 만나 지금까지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연봉이 올라가면 자신 있게 프러포즈할 생각이다.

박정준은 5월15일 한화전에서 프로 1호 홈런을 쳤다. “데뷔 7년 만에 쳐서 오히려 창피하다”고 했지만 유일하게 그 볼만은 간직하고 있다. 이제부터 그가 소유할 기념볼이 더 늘어날 것만 같다.

사직|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일러스트|박은경 기자 parkek411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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