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유환]새터민 지원은 통일예행연습

  • 입력 2009년 7월 8일 03시 04분


올해로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개원 10주년을 맞는다. 탈북자 1만6000여 명이 대한민국에 들어와 새터민으로 자리 잡았지만 안정적으로 남쪽사회에 적응한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 민족은 분단 이후 다른 삶의 방식을 유지했으므로 상당히 이질화됐다.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자본주의 민족’과 ‘사회주의 민족(김일성 민족)’으로 나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북쪽 주민은 집단주의 원리에 따라 사회주의·공산주의 인간형으로 주조(鑄造)됐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개인주의·자본주의 사회에서 탈북자가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북한은 ‘혁명의 주체는 수령·당·인민대중의 통일체라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라 나라를 하나의 ‘혁명적 대가정’으로 꾸려왔다. 하지만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대가정은커녕 소가정마저 지키지 못하고 가족해체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 중앙 공급이 끊긴 변방지역인 함경도 지역의 탈북자가 급속히 늘었다. 수십만의 탈북자가 중국 등지를 떠돌고, 특히 여성 탈북자의 인권유린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운 좋게 대한민국에 입국해도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나원에서 남쪽 사회 적응교육과 훈련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로의 재사회화 과정은 만만치 않다. 일정한 정착지원금을 받지만 우리 사회의 완전한 일원이 되기까지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쪽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재입북하거나 일탈행동을 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탈북자는 ‘맞춤식 지원정착 프로그램’을 원한다. 일률적인 지원이 아니라 성별 연령 학력수준 자격증을 고려한 체계적인 정착 지원을 요구한다. 한편 남쪽사회 일각에서는 탈북자로서의 수혜만을 기대하지 말고 행위의 주체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자기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탈북자를 껴안고 함께 살아갈 동포로 인식하기보다는 소수자로,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탈북자를 통일역군으로 보기보다는 이주민으로 본다는 말이다. 탈북자 정착 시설이나 관련 학교를 짓는 데도 이웃주민의 반대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탈북자의 정착 지원은 ‘통일예행연습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탈북자의 성공적인 정착이 향후 통일과정에서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탈북자 지원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탈북자 수가 늘어나는 현실과는 반비례하여 관심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탈북자를 통해 북한 사회의 실상을 파악하고 정착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탈북자가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중국과 한국에 머무는 탈북자 3만∼4만여 명이 이른바 ‘한라산 줄기’나 ‘두만강 자금’이라는 은어로 북한의 가족에게 정기적으로 송금한다고 알려졌다. 과거 북쪽 주민이 일본에 있는 가족과 친지로부터 ‘후지산 줄기’의 자금을 받아 유복하게 살았듯이 상당수 탈북자가 북에 있는 가족을 지원한다고 한다. 북한당국이 탈북과 송금을 묵인한 이유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다. 체제일탈행위를 묵인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체제안정을 도모한다. 하지만 남한 사회의 소식과 자금이 탈북자를 통해서 북에 전해짐으로써 북한 사회의 변화는 촉진될 것이다.

탈북자의 남쪽 사회 적응이 어렵게 되면 일탈행동을 하거나 정치세력화할 가능성이 있다. 탈북자가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착한 탈북자가 나중에 입국한 탈북자의 후원자가 돼서 도와줘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통일 대비 차원에서 탈북자를 고용해 통일예행연습을 해야 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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