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 불법영업 신고포상금제 시행 후…

  • 입력 2009년 7월 8일 03시 04분


서울 강북의 대치동으로 불리는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 밤늦게 학원수업을 마친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갈 학원버스가 길가에 늘어서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 강북의 대치동으로 불리는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 밤늦게 학원수업을 마친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갈 학원버스가 길가에 늘어서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은 사교육비 경감 후속대책인 학원 신고 포상금제도를 발표한 6일 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서울 강남교육청 직원들과 학원 불법 영업 단속을 벌였다.

한 직원은 “오늘 신고 포상금제도를 시행한다는 발표가 난 뒤 ‘비디오를 찍어서 가져갈 테니 포상금을 줄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20∼30통이나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도 7일 학원 건전운영을 위한 단속 계획을 발표했다.

단속 보조요원 54명을 배치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공조를 강화하고 각 지역 경찰과 주 2회 이상 공동 단속한다는 계획이다.

잇따르는 대책에 학원가는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예년 이맘때면 과학올림피아드, 수학올림피아드(KMO) 2차 시험 준비로 한창 호황을 누릴 시기지만 일부 학원에서는 경시반을 아예 없앴다.

한 강사는 “지난달 사교육비 대책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심야에 불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커튼을 구입하는 학원이 많았다”며 “하지만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본보기가 되면 호되게 당한다’는 분위기가 퍼져 몸을 사리는 상태”라고 전했다.》

심야교습 ‘눈치’, 고액 학원비는 ‘글쎄…’

유명강사 고액 강의료 여전
수강료 현금 받아 세무조사 피해

○ 학원 강사만 배불리는 고액 수강료

유명 언어영역 강사 A 씨는 자립형사립고 상산고가 있는 전북 전주 지역의 한 학원에서 출강 제의를 받았다. 강의는 매주 토요일 한 시간, 서울에서 전주로 왕복하는 교통편도 학원에서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학원이 A 씨에게 제안한 강의료는 월 1000만 원. 그러나 A 씨는 거절했다. 고교 교사 출신인 A 씨는 “어차피 주말이면 학생들이 학원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는데 강사를 부르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학부모들이 지갑을 열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라며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그 돈이 학부모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승낙하겠느냐”고 말했다.

강남 학원가 유명 강사들의 ‘복지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강의료와는 별도로 도서구입비, 법인카드를 지급하는 것은 물론 무료 항공권을 제공하는 학원도 많다. 수학 강사 이모 씨(33)는 “강사들의 해외 교육 현장 탐방을 내세워 학부모들에게 돈을 걷는 학원도 적지 않다”며 “이렇게 받은 돈으로 학원은 강사들에게 무료 항공권을 주며 해외여행을 시켜 준다”고 말했다. 2006년까지 대기업 직원으로 일하던 이 씨는 지난해 환갑을 맞은 아버지에게 고급 외제차를 선물했다.

○ 교육청 신고액은 카드, 초과분은 100% 현금

교육청에 신고한 금액은 카드로 받고 현금영수증도 발급하지만 초과분은 100% 현금으로만 받는 것이 학원들이 즐겨 하는 고전적인 탈세 수법이다. 이에 대해 이원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공부 못한다는 아이들 고통을 가지고 20∼30%씩 이득을 남기는 악덕기업”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지난해 세무조사로 추징금 10억여 원을 받은 학원이 나와도 학원비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남 C어학원 등 유명 학원은 한 달에 학원비로 수백만 원씩 받지만 돈이 있다고 아무나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급화 전략’으로 상위권 학생만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학원비도 덩달아 오른다.

학부모들은 “뻔히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학부모 라모 씨(47·여·서울 강남구 일원동)는 “혼자서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아들이 H물리문제집을 들고 과학 선생님을 찾아갔지만 문제를 푸는 데 애를 먹는 모습을 보고 와서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며 “학교 교육만으로 대비할 수 없는 시험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4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교육 참여가 높은 학생이 학교 성적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 신고 포상금제, 고액 학원비 잡을 수 있을까

학원가에서는 신고 포상금제도 도입으로 오후 10시 이후 심야 교습은 줄어도 고액 학원비 단속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B학원 원장은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 심리는 ‘남이 하는데 나는 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거꾸로 ‘다 같이 안 하면 나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을 것”이라며 “하지만 고액 학원비는 외부로 잘 알려지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도 많아 생각보다 신고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전에 학원에서 ‘끼워 팔기’ ‘수업 덧붙이기’ 같은 수법으로 학원비를 올려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학부모들 사이에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제보를 받고 단속에 나서도 학생, 학부모가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아 적발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단속 인력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학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여전히 문제다. 서울 강남교육청 관내에만 학원이 5556개나 있지만 단속 공무원은 3명뿐이다. 강남교육청 학원지도담당 직원 김정미 씨는 “신고가 들어와도 인력 부족으로 단속 시기를 놓칠 때가 많다”며 “현장을 찾아보면 학원장이 바뀌어 관련 자료가 이미 사라진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강남 C학원 원장은 “역대 정권이 모두 임기 내에 사교육비를 해결하겠다고 말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이번에도 학원들은 제도를 피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낼 것”이라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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