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찬구]‘미래형 교육과정’ 지식보다 전인교육을

  • 입력 2009년 7월 8일 03시 04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마련 중인 ‘미래형 교육과정’에 대해 교육계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전 정부에서 준비한 교육과정을 시행하기도 전에 근본적으로 변혁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힘들여 지어 놓은 집의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집의 못을 모두 뽑아 버리려는 일과 같다. 건물의 못을 다 뽑아 버리면 당연히 집은 무너진다. 집을 짓기 위해 적어도 5년 이상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이미 지어진 집을 다 부수고 멋진 집을 새로 짓겠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멋진 건축가를 만났을까? 그 건축가는 집에서 살게 될 사람의 안전과 행복을 자신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믿음을 줄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이 있다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희생을 치르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진정성을 갖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교육철학적 신념을 갖고 사회적 요구를 폭넓게 수용하면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절차를 생략한 채 밀어붙인다. 교과목을 10개에서 7개로 줄이고 특정 과목은 집중 이수를 하는 게 핵심내용이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대안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입시과열의 원인은 과목수가 많기 때문일까? 국영수만으로 입시를 치른다면 경쟁이 완화될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문제의 난도를 높여온 전례를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예컨대 도덕 과목 때문에 사교육이 늘어났나? 사교육의 주범은 도덕 음악 미술 기술 가정이 아니다. 언제나 영어 수학이 핵심이었다.

영어의 예를 보자. 예전에는 10년씩 영어를 배워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발음이 중요하고 회화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다르다. 이제는 많은 학생이 웬만한 회화는 할 수 있다. 문제는 대화의 질이다. 외국인과의 진정한 의사소통은 폭넓은 식견과 정확한 지식에 좌우된다. 그렇다면 간단한 회화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모든 학생에게 그렇게 많은 정규교과시간을 할애하는 방안이 과연 효율적일까?

초중고교에서 수학을 배우는 이유는 생활에 직접 쓸모가 있다기보다 합리적 사고능력을 키움으로써 세상살이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수학을 배워야 목적에 부합할까? 문과를 졸업한 사람은 삼각함수를 써먹을 일이 거의 없다. 어려운 삼각함수 문제를 푸는 능력이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보다 살아가는 데 더 도움이 될까? 우리나라 학생의 수학실력은 중고교 때까지만 높다. 대학 이후 수학과 과학에서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인물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우리의 교육은 수학적 사고능력보다 문제풀이 요령을 키우는 데 더 주력하지 않았을까? 우수한 자질을 가진 아이로 하여금 오히려 수학을 지겹게 느끼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교육경쟁력을 약화시켜 오지 않았을까?

여기에 더해 새로운 교육과정은 20%의 수업시수를 학교 자율에 맡기자고 하는데, 지금 같은 입시 위주의 풍토에서 결국 여타 과목의 시수를 조정하여 국영수로 돌리게 될 것이 뻔하다. 또 국영수 이외의 과목은 전체 내용을 한두 학기에 집중 이수하도록 권장하는데 덕성교육과 예체능교육을 단기완성 기능교육처럼 해치울 수 있을까? 미래형 교육과정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고등학교까지의 보편교육은 전인교육이어야 한다. 인생과 세계를 넓고 깊게 바라볼 줄 아는 교양인을 키워야 한다. 도구적 지식만으로 무장된 냉혈한을 키워낸다면 국가적 재앙으로 귀결되고 만다. 미래형 교육과정은 마땅히 재검토해야 한다.

박찬구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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