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온두라스 대통령 귀국 불발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7분


임시정부 활주로 봉쇄… 셀라야, 니카라과로 회항

공항서 軍-지지자 충돌… 30여명 死傷 ‘유혈사태’

군사 쿠데타로 축출된 호세 마누엘 셀라야 온두라스 대통령이 5일 밤 수도 테구시갈파 공항을 통해 귀국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지지자들과 군 병력이 충돌해 최소 2명이 숨지고 30명 이상이 부상했다. 셀라야 대통령이 탄 베네수엘라 정부 비행기는 수차례 공항 상공을 선회하며 착륙 기회를 엿봤으나 임시정부 명령에 따라 출동한 군 병력이 차량을 이용해 활주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끝내 착륙하지 못했다. AP통신은 셀라야 대통령이 귀국을 거부당하자 니카라과를 거쳐 엘살바도르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셀라야 대통령은 7일 다시 귀국을 시도하겠다고 밝혀 유혈사태 재발이 우려되고 있다.

셀라야 대통령은 기내에서 가진 베네수엘라 국영방송과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군 통수권자로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도록 활주로 개방을 명령한다”고 촉구했으나 군 병력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어 “(쿠데타로 집권한) 온두라스 임시정부에 대해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더 강력한 (반대)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을 경우 미주 대륙의 민주주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낙하산이 있다면 바로 뛰어내리고 싶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유혈사태는 셀라야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가 모습을 드러낸 뒤 공항 주변에 운집한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공항 안으로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발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군 병력은 지지자들을 향해 최루탄을 쐈으며 일부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AP통신은 이 과정에서 지지자 한 명이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고 현장 사진기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온두라스적십자사는 최소 30여 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셀라야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가 니카라과 방향으로 기수를 돌리자 지지자들은 일제히 “우리는 ‘푸른 철모’(유엔 평화유지군을 지칭)를 원한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지지자 카린 안투네스 씨(27)는 “우리의 대통령이 돌아올 때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셀라야 대통령의 귀국 강행 시도로 유혈사태가 촉발되자 온두라스 임시정부는 야간통행금지령을 발령하는 등 통제의 고삐를 한층 당기고 있다. 로베르토 미첼레티 임시 대통령은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누구와도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셀라야 대통령에 대한 입국 불허 방침을 재확인했다. 미첼레티 임시 대통령은 또 니카라과가 군대를 온두라스와의 국경지대로 이동시킨 점을 언급하며 “우리는 국경을 지킬 준비가 돼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임시정부는 군사 쿠데타를 이유로 온두라스의 회원국 자격을 무기한 정지시킨 미주기구(OAS)에 대화를 제의했다. 마르타 로레나 알바라도 외교차관은 “온두라스는 OAS 대표단의 방문을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오바마 행정부가 이 같은 움직임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임시정부가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확고한 방침을 갖고 있어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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