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을 억누르지 말라… 강렬한 원색작업 주목 서용선 씨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6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展

강렬하다. 충만하다. 압도적이다.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올해의 작가 2009-서용선 전’을 처음 대면하는 순간, 관람객의 심장박동은 갑자기 빨라진다. 인간사의 아픔과 고뇌,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이 스며있는 거대한 화폭. 투박하고 거친 붓질과 붉은색 녹색 등 원색이 밀도 있는 화면과 어우러지며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올해의 작가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마련한 전시로 한국 현대미술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룬 작가를 선정해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화가 서용선 씨(58)를 조명한 이번 전시는 대형 회화 50여 점, 조각 10여 점, 드로잉 120여 점으로 제1전시실과 중앙홀, 주 현관 앞 공간을 꽉 채운다.

작가를 대표하는 회화작업은 역사를 소재로 한 것과 현대도시 및 인물을 다룬 그림으로 나뉜다. 전시장에선 태고의 마고할미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얼굴에 이르기까지 역사 신화 전쟁 인물 풍경 등을 다룬 작품들이 옴니버스 영화처럼 끝없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림마다 과감한 원색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그는 “유교의 영향 아래 억제된 색채를 사용하는 것이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며 “이런 틀을 뛰어넘어 색에 대한 잠재된 욕구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역사라는 주제를 파고드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지나온 과거와 그 연장선으로서의 현장인 삶의 공간은 연속되어 있다. 그것은 기억을 통해 연결되는데, 우리 삶과 역사가 기억과 그것의 실천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사와 신화를 비현실적으로 생각하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는 데서 우리의 비극은 시작된다. 망각은 인간에게 치유와 동시에 불행을 가져온다.”

이런 사유를 바탕으로 작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단종과 사육신 등 역사적 사건을 다룬 연작을 발표한다.

“유럽의 미술에서는 역사적 사건과 비극을 다루는데 한국 미술에는 왜 그런 작품이 없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강원 영월에서 단종 유배의 현장을 접한 뒤 이를 한국 미술에서 비극의 원형이 되는 소재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도 작가의 오래된 소재다. 그는 무표정하고 어두운 얼굴 속에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속 깊은 성찰을 녹여낸다. 인간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재현적 방법이 아닌 심리적 투영이 어떻게 가능한지,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다. 탄탄한 내공과 뚝심을 자랑하는 그는 이번에 처음 대형 입체작업도 시도해 눈길을 끈다.

8년째 강원 태백의 환경 문화 역사를 주제로 한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예술가 모임인 ‘할아텍’에 참여해 온 작가. 그는 한국적 정서와 미감을 독자적으로 구현한 미학적 성취와 더불어 작가적 태도로도 존경받고 있다. 모교인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던 작가는 1년 전 사표를 내고 그림에만 전념하고 있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1500∼3000원. 02-2188-600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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