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한옥이 날아와 美아파트에 박혔네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6분


■ LA카운티미술관 한국미술 12인전

“와, 색이 정말 환상적이다!”

색색의 천으로 휘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라크마(LACMA·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를 찾아온 관람객들. 1층 매표소 앞에 매달린 울긋불긋한 플라스틱 용품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손으로 만져 보거나 그 사이를 걸어 다닌다. 줄줄이 사탕처럼 깔때기와 바구니 등 값싼 생활용품을 이어놓은 것은 한국 작가 최정화 씨의 ‘해피해피’란 설치작품이다.

이를 지나 왼쪽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장 양쪽 입구에 설치된 웹아트 공동제작팀 ‘장영혜 중공업’의 작품이 반겨준다. 영상이 아닌, 단어와 문장이 빠르게 지나가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작품. 이어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낙하산을 타고 온 한옥이 서구식 아파트와 부딪친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도호 씨의 ‘떨어진 별 1/5’은 어린 시절 그가 살았던 한옥과 미국 유학 시절 처음 거주한 아파트를 되살린 작품이다. 그 옆에 네 토막으로 잘린 투명한 건물을 살펴보니 한복판에 한옥이 오롯이 들어있다. 한 공간에서 어우러진 두 작품은 동서양의 융합과 공존에 대한 시각을 드러낸다.

이는 한국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당신의 밝은 미래: 한국현대미술 12인’전의 풍경이다. 라크마와 휴스턴미술관 공동 주최로 지난달 28일 개막한 이 전시는 미국 주요 미술관에서 처음 시도하는 한국 미술가들의 대규모 특별전으로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장문의 리뷰가 실리는 등 미국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진해운이 후원한 라크마 전시에는 작고작가 박이소(1957∼2004) 씨를 비롯해 구정아 김범 김수자 김홍석 박주연 서도호 임민욱 양혜규 장영혜중공업 전준호 최정화 씨의 작업이 선보여진다. 라크마의 린 젤레반스키 씨, 휴스턴미술관의 크리스틴 스타크먼 씨,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 전시의 공동큐레이터를 맡아 2년여간 준비했다.

전시 제목 ‘당신의 밝은 미래’는 위태로운 현실을 은유하는 동시에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긍정을 담은 박이소 씨의 작업에서 빌려왔다. 젤레반스키 씨는 “이번 전시는 미국 관객들에게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동시대 국제 미술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를 살펴보는 기회”라며 “삶과 시간, 정체성의 덧없음, 언어와 문화 그리고 세대 사이 소통의 한계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는 김수자 씨의 ‘바늘 여인’. 인도 예멘 쿠바 등에서 본인의 퍼포먼스를 찍은 비디오 작품으로 명상의 시간을 선사한다. 번잡한 거리에서 뒷모습만 보인 채 꼼짝 않고 서 있는 작가. 그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아무 미동 없이, 침묵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작가의 뒷모습은 마치 바늘처럼 여러 도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보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불러온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 양혜규 씨의 ‘창고 작업’은 전시 후 팔리지 않고 되돌아온 작업을 포장된 상태로 모아놓은 설치작품이다. 작가의 기억이 녹아든 자전적 작업은 실제 현대 미술가들이 처한 문제를 흥미롭게 엿보는 기회를 준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본전시에 참여하는 등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구정아 씨의 작업은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 돌을 먼지처럼 갈아 아주 미세한 풍경을 연출한 작업 등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사물과 상황에 관심을 드러낸다.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망하기 위한 이번 전시는 비디오와 설치작업 위주로 구성돼 일반 관람객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쉬움도 남긴다.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한국 현대미술의 활기차고 세련된 단면을 조명한 점은 돋보였다.

이 전시는 라크마에서 9월 20일까지 이어진 뒤 11월 22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휴스턴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긴다.

로스앤젤레스=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참신하고 다양한 작품들에 놀라”▼
마이클 고번 LA카운티미술관장
“한국미술 세계에 알리는 출발점”

1965년 개관한 라크마는 현대미술은 물론이고 아시아, 유럽, 북남미의 다양한 유물을 소장한 미국 중서부의 최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로스앤젤레스의 다민족 사회를 대표하는 라크마를 2006년부터 이끌어온 마이클 고번 관장(46·사진)은 ‘당신의 밝은 미래’전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한인 공동체를 갖고 있는 도시인 만큼 한국의 현대미술을 소개하기 위해 전시를 열게 됐는데 새롭고 참신한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번 전시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덜 알려진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합니다.”

전시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관객들이 흥미롭게 바라볼 만한 작품 위주로 구성됐다. 따라서 출품작들은 한국의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 보편적 이슈와 연결되면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를 통해 한국 미술이 얼마나 다양한지, 질이 높은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수자 씨의 비디오 작품을 보고 자리를 뜨기 힘들 만큼 감동적이라고 말한 관객도 있고, 두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서도호 씨,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정신적 자극을 주는 양혜규 씨의 작업 등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트위터를 통해 들어온 반응을 읽어주며 “옛날에 했던 거라 익숙하다는 반응과 이런 걸 본 적 없다는 반응이 엇갈리는데 이는 전시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라크마는 이 전시에 이어 9월 한국전시실의 문을 다시 연다. 고번 관장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미술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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