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소유냐 존재냐’

  • 입력 2009년 7월 6일 02시 57분


◇ 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까치글방

소유는 존재를 잠식한다

인생은 선택이다.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매순간 선택한다. 그런데 선택 상황에서 던지는 질문에는 층위가 있다. ‘대학에 왜 가야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한 수험생은 ‘어느 과에 갈 것이냐’는 질문에 줏대 있는 답변을 하기 어렵다. 좀 더 근본에 접근하는 질문은 ‘선택의 지도’를 읽는 출발점이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질문은 아마도 햄릿이 던졌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일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어머니의 부정을 알고 난 뒤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보다는 운명과 삶에 대해 근본 질문을 던지며 괴로워했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햄릿의 질문을 20세기형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질문은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인이 추구하는 삶의 지향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두 가지 갈림길을 두고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 그것이 문제다’라고 일갈한다.

프롬이 보기에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는 전적으로 소유지향과 이윤추구를 중심가치로 삼는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했던 프롬은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관찰하듯 현대인의 소유 지향적 태도를 꼼꼼하게 체크한다.

소유 지향은 대표적으로 돈이나 명예, 권력 등에 대한 무한한 탐욕을 말한다. 한 꺼풀, 두 꺼풀 벗겨도 알맹이를 만날 수 없는 양파처럼 우리는 더 많은 물질적 수단과 경제적 가치를 원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러한 자세는 점점 더 확대된다. 정신, 지식, 사랑, 신앙까지도 소유의 도시에 이미 포섭되었다.

예를 들어, 강의 시간에 들은 내용을 달달 암기식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소유 양식에 젖은 학생이다. 그는 남의 주장을 소유하는 일에 관심이 있을 뿐, 새로운 의문과 관심을 갖고 자유롭게 대응하는 행동에는 부담을 느낀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심화시키지도, 스스로 무엇인가를 깨우치지도 못하고 그저 줄거리에만 이끌려 다니는 모습도 소유 양식이다. 책의 결말과 주요 사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지식 소장품을 습득하는(소유하는) 데 머무르기 때문이다. 소유양식의 목표는 ‘더 많이 아는 것’이고, 존재양식의 목표는 ‘더 깊이 아는 것’이라는 게 프롬의 분석이다.

반면, 존재 지향의 태도는 우리의 삶을 훨씬 더 생산적이고, 능동적이고, 안정적으로 만든다. 친구나 애인, 건강, 여행, 예술품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아는 소유 대상을 잃어버리면 상실감을 느낀다. 적게 소유하면 가치도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사물이 인간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기쁨을 느끼면 외적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자아를 갖게 된다.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깊이 있게 본다거나, 한 편의 시를 읽고 시인이 표현한 느낌을 공감하며 자기 내면을 의식하는 사람은 영혼의 주인이다. 마치 최면에 빠진 사람처럼 타인의 통념에 따라 자신을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의미 있게 여기는 행동을 실천할 때 자기 소외를 극복한 능동적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프롬은 우리가 더 늦기 전에 소유 양식의 삶에서 존재 양식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낙관주의자였던 그는 ‘꿈꾸는’ 유토피안이 아니라 ‘깨어 있는’ 유토피안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성격구조를 바꾸려면 새로운 사회를 향한 변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건전하고 이성적 소비, 소비자 운동, 참여민주주의, 분권화, 관료주의 탈피, 국가간 빈부격차 완화, 여성 권리 확대 등이 그가 내놓은 처방전이다. 이 책이 출판된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유효한 그의 대안은 왜 이 책이 고전인지를 알게 해준다.

프롬이 꿈꾸었던 ‘존재의 도시’는 가능할까. “소유는 사용에 따라 감소하나, 존재는 실천을 통해 증대한다.” 오직 우리의 실천을 통해서만 ‘소유냐 존재냐’고 물었던 그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asynonsul.com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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