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존댓말

  • 입력 2009년 7월 6일 02시 57분


말을 통해, 말을 넘어 끊임없이 확인되는 ‘권력관계’

존댓말, 단지 어법 - 예의에 그치는 걸까

○ 생각의 시작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울 때 애먹는 이유 중 하나가 ‘존댓말’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히 우리말은 높임법이 특별히 발달했다. 주체 높임, 객체 높임, 상대 높임 등 높임의 대상에서부터 대화 상대인 제3자에 대한 존대 표현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도 ‘말 다듬기’를 중요하게 가르친다.

『※ 다음 말을 다듬어 보자.

⑴ 너, 선생님이 빨리 오래.

→ 너, 선생님께서 빨리 오라셔.

⑵ 주례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 주례 선생님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

[고등 국어(상) 4 - ‘바른 말 좋은 글’]』

○ 견해 1

『아이: “엄마, 물 좀 갖다 주라!”

엄마: “니 물은 니가 가져다 먹어!”

아이: “에이, 치사하게….”

엄마: “너 뭐라고 했어. 이 녀석이 버릇없이.”』

아이가 부모 이외의 다른 어른과 만날 기회가 늘어나는 시기가 되면 대부분의 엄마는 존댓말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듯이 반말을 한다면 대부분 버릇없는 아이라는 평가를 듣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평소에 훈련을 시킬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다른 의도도 있다. ‘말’이라는 형식은 말하는 사람의 내면에 작용하는 것이므로 존댓말을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절 바른 아이로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다. 확실히 존댓말을 쓰면서 상대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견해 2

『- 차량끼리 접촉 사고가 난 상황에서

운전자 A: “운전 똑바로 해!”

운전자 B: “당신이 잘못 했잖아!”

운전자 A: “어디다 반말이야! 너 몇 살이야!”

운전자 B: “당신이 먼저 반말했잖아!”』

이쯤 되면 대략 막가는 상황이다. 실제로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의 과실 여부보다 상대방의 말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청자의 입장일 때 존댓말은 상대를 존중하는 반면 반말은 무시하는 태도라는 고정관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편 화자의 입장에서 반말은 자기 정당성에 대한 시위이며, 존댓말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라는 의식이 작용한다. 말하자면 반말은 대립적 인간관계에서 강자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의식이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존댓말과 반말의 심층에는 강자와 약자의 권력 관계가 전제되어 있다. 연장자와 연하자, 직장 상사와 부하, 교사와 제자, 선배와 후배, 남편과 아내 등 모든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통용되는 존댓말과 반말의 밑바닥에는 ‘예의’가 아닌 ‘힘’의 논리가 깔려 있다. 말이 가지는 단순한 의미 이상의 심각한 사회 불평등적인 요소가 깔려 있는 것이다. 연하자가 연장자에게, 제자가 교사에게, 부하가 상사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아마 연장자나 교사, 상사는 당장 흥분하며 멱살을 잡으려 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응징을 하려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위아래도 모르는 놈’으로 비난받을 것이다. 이처럼 존댓말과 반말은 사람들에게 상하 관계를 확인시키며 순응을 강요한다.

○ 그렇다면, 이건?

문제는 우리말의 높임법에 반영되어 있는 권위주의 아닐까? 존댓말과 반말,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존댓말 속에 웅크리고 있는 고압적 권위주의와, 반말 속에 들어있는 상대에 대한 멸시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표현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평등 원리에 위배되는 태도나 인식을 고쳐야 한다. 존중해야 할 대상을 향한 언어 폭력적인 반말은 인간관계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연령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민주적인,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닐까?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asynonsul.com

전문규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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