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비정규직 핑퐁의 덫

  • 입력 2009년 7월 6일 02시 57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계약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비정규직보호법이 논란 끝에 7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산업현장에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서민들의 절박한 사연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충남 부여의 한 기업은 비정규 단순노무직 209명의 계약을 해지하고 용역파견업체에 이들을 고용하도록 한 뒤 다시 자기 회사에 파견을 받는 편법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 영세 제조업체들은 비정규직 직원들을 해고하고 비슷한 업종의 회사끼리 직원을 교환해 채용하는 ‘돌려 막기’로 인력을 쓰고 있다.

편법이라도 출근할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행복한’ 축에 속한다. 두 고교생 자녀를 둔 조리사 아줌마는 월 190여만 원을 받던 병원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고, 암에 걸린 아내와 초등생 딸을 둔 40대 가장은 국회 앞 도로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살길을 마련해 달라며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적지만 알토란 같은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한 가정의 생계는 아스팔트 위로 쫓겨나고 있다.

어느 비정규직 근로자는 “미국에서 퇴근시간에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기다리라고 한 뒤 몇 층에 있는 직원들은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무작위로 대량 해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어넘긴 적이 있다”면서 “막상 나도 ‘계약해지’라는 문서 한 장 받고 쫓겨나니 다리에 힘이 쭉 빠지더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비정규직법을 놓고 정부와 여야, 노동계가 대립하는 사이 힘없는 서민들의 밥줄이 잘려 나가는데도 서로 네 탓만 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법 시행을 유예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민주당과 노동계는 정규직 전환을 꺼리는 기업 논리라며 반대하고 있다. 사실 2006년 11월 지금의 비정규직법 제정을 강행한 것은 당시 열린우리당이다. 그때도 2년마다 해고사태가 잇따를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해고를 많이 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노무비용이 많이 들어 기업들이 해고를 자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뒤에도 해고 대란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참여정부 말에는 대선 논리에 밀리고, 이명박 정부는 촛불에 놀란 탓인지 노동계의 눈치를 보느라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다 4월에야 법 개정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노동부는 70만∼100만 해고설을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과 노동계는 30만∼40만밖에 안 되는데 정부가 뻥튀기를 하고 있다며 숫자 싸움을 하고 있다. 노총 홈페이지에는 국회의원을 2년 비정규직으로 뽑아 설움을 느끼게 해보자는 분노의 패러디도 올라온다.

5일에도 여야 국회 원내대표가 만났지만 한나라당은 1년 유예를, 민주당은 유예 절대 불가로 맞서는 바람에 말싸움으로 끝났다. 비정규직 해법을 촉구하며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1일 눈물을 흘렸고, 법 개정안 상정을 막아 ‘추미애 실업’이란 공격을 받고 있는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도 5일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놓고 서로 핑퐁을 하는 사이 일자리를 잃은 서민의 가슴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정부와 여야, 노동계는 법 시행을 최소한으로 유예하고 서민이 거리로 나앉는 일부터 막아야 한다. 한 달 해고 인원이 얼마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서민에게는 실직보다는 당장 할 일거리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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