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라의 온기어린 속삭임 ‘가영-탱고의 꽃’

  • 입력 2009년 7월 5일 15시 50분


<양형모의 음담패설>

비올라의 크로스오버앨범.

흔치 않은 이 앨범의 주인공은 비올리스트 김가영(33)이다.

지난해 디지털앨범으로 4곡을 공개하더니 이 참에 ‘Flor de Tango’라는 정식음반을 내놨다. 클래식과 재즈, 국악, 크로스오버를 헤집고 다니는 피아니스트 박종훈과 재즈그룹 ‘Interplay’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 김민석이 함께 했다. 우리말로는 ‘탱고의 꽃’이 되겠다.

“악기로 보면 반전의 매력이랄까요? 무뚝뚝한 사람이 웃기면 더 재밌잖아요.” 김가영 씨와 같은 미모의 연주자가 웃기면 더욱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으로는 꺼내지 못했다.

비올라는 화려한 악기가 아니다. 바이올린의 ‘뚱뚱한’ 버전이다. 바이올린과 함께 달리면 모래주머니를 찬 듯 뒤뚱뒤뚱하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실내악에서도 뒤에서 내조의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올라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에서 비올라를 제거해 보면 당장 알 수 있다. 비올라가 빠진 베를린 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 오케스트라보다 당연히 못할 것이다.

김가영 씨는 한국종합예술학교와 뉴욕 메네스음대에서 공부했고, 현재 부산시향 비올라 수석으로 재직 중인 정통 클래식연주자다.

“클래식 연주자의 일탈? 그런 건 아니고요. 늘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공유’죠. 타협이 아니라.”

박종훈, 김민석이란 ‘거물’들과의 공동작업은 어땠을까?

“화기애애하고 좋았죠. 세 사람 모두 장르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다들 천진하다고 해야 하나. 음반 제목인 ‘탱고의 꽃’을 놓고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니까요. 누가 ‘꽃’을 하느냐는 거죠, 하하하! 저는 당연히 제가 꽃인 줄 알았는데. 결국 기타가 이겼어요. 그래서 김민석 씨가 ‘꽃’, 제가 ‘탱고’가 됐지요. 박종훈 씨요? ‘~의’죠 뭐, 하하하!”

음반에는 모두 10곡이 담겨 있다. 이 중 후반부 4곡이 박종훈의 오리지널 작품이다. 김가영 씨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타이틀 롤인 ‘인생의 회전목마’. 2004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테마곡이다. 비올라의 깊은 저음과 고음이 4분 안에 고루 다 나올 수 있도록 박종훈이 편곡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전 어른이 되어서도 하늘을 난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인공들이 하늘을 걷지요. 하늘을 걸으면서 왈츠풍의 음악이 흐르는 장면. 그게 너무 좋아서 박종훈 씨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비올라에 대한 얘기를 들려달라고 청하자 김 씨는 뜬금없게도 비올라에 얽힌 농담 하나를 들려주었다.

한 시골악단의 비올라 수석을 맡고 있던 사람이 출세를 하고 싶어서 램프의 요정을 불러냈다. ‘음악가로서 출세하고 싶다’고 하자 요정이 ‘소원을 들어 주겠다’라고 했다.

자고 일어나니 자신이 베를린 필의 비올라 수석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기뻤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이 사람은 요정에게 ‘더욱 더 출세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요정은 ‘알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이 사람은 자신이 있던 시골악단의 바이올린 주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것도 세컨드 바이올린으로, 맨 뒷자리였다. 김가영 씨는 “비올라에 관한 이런 비참한 농담은 100가지나 더 있어요”하며 웃었다.

그의 음반 ‘탱고의 꽃’을 CD 플레이어에 넣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이 곧바로 나를 하늘로 이끌었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은 “하늘 위를 걸을 수 있다고 믿으면, 걸을 수 있어”라고 했던가.

음의 하늘 위를 걸으며 비올라를 생각했다.

비올라가 너무도 매력적인 이유가 100가지나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제공 루비스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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