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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손택균]노장감독 발붙일 곳 없는 한국영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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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손택균]노장감독 발붙일 곳 없는 한국영화계

입력 2009-07-04 02:52수정 2009-09-22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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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노장 감독이 발붙일 곳 없는 영화계 현실을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저세상에서 좋은 영화 맘껏 만드시길….”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유현목 감독의 영결식. 김수용 감독(80)이 추모사를 읽으며 울먹였다. 영정에 꽃을 바치려고 늘어선 줄에는 이장호(64) 정지영(63) 배창호(56) 장길수 씨(54) 등 여러 중견 감독이 보였다.

이들은 1990년대까지 한국 영화계를 이끌었지만 최근에는 작품을 통해 만나기 어려운 감독들이다. 배우 이덕화 씨는 조사에서 “한국 영화판에 노인은 있는데 노장은 없다”고 한 고인의 말을 전했다.

‘별들의 고향’(1974), ‘어우동’(1985)을 히트시켰던 이장호 감독은 1995년 ‘천재 선언’ 이후 개봉작이 없다. ‘남부군’(1990)으로 흥행에 성공하고 ‘하얀 전쟁’(1992)으로 도쿄국제영화제 대상과 감독상을 받았던 정지영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1998년 ‘까’ 이후 멈췄다. ‘고래사냥’(1984)으로 40만 관객을 동원하고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꿈’(1990) 등을 만든 배창호 감독도 마찬가지. 2001년 ‘흑수선’이 흥행에 실패한 뒤 2004년 서정적인 소품 ‘길’을 찍었지만 2006년에 2개 스크린에서 겨우 개봉했을 뿐이다.

조문객 중 꾸준히 메가폰을 잡고 있는 ‘최고참 현장’ 감독은 49세의 강우석 씨였다. 강 감독은 “영화를 수익으로만 평가하는 풍토가 굳어지고 투자자가 입맛대로 주무르기 쉬운 신인만 찾으면서 중견 감독들이 활동했던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가 뜯겨져 나갔다”며 “나도 제작 일을 병행하지 않았다면 (감독으로서) 도태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투자배급사의 관심권 안에 든 ‘노장 현역’은 73세의 임권택 감독뿐이다. 일본의 경우 ‘하나비’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61)이 2007년 ‘감독 만세!’ 등 거의 매년 신작을 개봉하고 있다. ‘철도원’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은 75세의 현역이다. 2006년 사망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71세 때 ‘우나기’로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79세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그랜 토리노’(2008) 등 수작을 계속 내놓는 것도 현장에서 세월을 삼키는 덕분이다.

영화는 큰돈이 들어가는 산업이다. 하지만 유현목 감독이 생전에 늘 말했듯 예술의 한 장르이기도 하다.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 한국 영화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견 감독들을 잃는 것은 영화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체의 손실이다.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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