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자본주의의 덫에 걸린 욕망의 군상들

  • 입력 2009년 7월 4일 02시 52분


◇상처받지 않을 권리/강신주 지음/456쪽·1만7000원·프로네시스

《“그녀의 목소리가 방자해졌어”라고 나는 말했다. “뭐라할까…”

내가 머뭇거리자 갑자기 그가 말했다.

“돈 냄새야.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돈 냄새가 나” 그렇다.

바로 그것이었다.

돈냄새―이것이야말로 그녀의 목소리 속에서

딸랑거리며 고개를 쳐드는 그칠 줄 모르는 매력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문학자-철학자 짝지어 등장
유혹에 휘청대는 현대인 분석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 비밀을 ‘욕망의 집어등(集魚燈)’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했다. 심해의 오징어는 오징어잡이 배에 매달린 집어등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는 “화려한 불빛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달하고 싶은 치명적 유혹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을 유혹하는 자본주의의 집어등은 도처에 널려 있다. 마네킹을 비추는 불빛, 번개처럼 점멸하는 네온사인의 불빛, 클럽 안의 몽환적 불빛, 섹시한 웨이브와 고혹적 목소리를 발산하는 TV의 불빛…. 저자는 “자본주의가 만든 욕망의 집어등은 우리에게 자유와 기쁨을 주는 것처럼 교묘하게 작동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내밀한 속살을 보자는 게 이 책의 취지다. 저자는 동서고금의 문학가와 철학자를 짝지어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을 분석하는 방식을 택했다.

○ 소설가 이상-철학자 짐멜

돈이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사람은 소설가 이상과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짐멜이다. 이상의 대표작 ‘날개’에는 ‘돈’이라는 소재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주인공인 ‘나’는 아내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생계를 연명한다. 아내는 매춘으로 번 돈의 일부를 주인공에게 건넨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거꾸로 아내 손에 돈을 쥐여주고, 처음으로 자신의 골방이 아닌 아내의 방에서 잠자리에 든다.

저자는 “돈의 가치와 의미를 몰랐던 주인공은 마침내 돈의 위력을 깨달았다”면서 “이상은 우리 사회에 도래한 자본주의의 핵심인 ‘돈’의 논리를 찾는 데 최초로 성공했던 작가다”라고 설명했다.

짐멜은 돈의 지배를 받으면 인간의 삶과 내면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탐구했다. 짐멜에 따르면 화폐의 등장은 인간과 사물 사이 혹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항상 돈이 개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나와 타인, 나와 사물 사이의 직접적 관계는 단절됐다.

○ 시인 보들레르-철학자 베냐민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와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의 저작에선 산업자본주의 태동기의 유행, 매춘, 도박 같은 자본주의적 삶의 다양한 편린들이 등장한다.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중심지 파리에서 살았던 보들레르는 산문집 ‘파리의 우울’에서 “늙은 매춘부에 취한 난봉꾼처럼 이 거대한 매춘의 도시에 취하고 싶소”라고 파리를 노래했다. 하지만 유산을 탕진한 보들레르에게 파리는 그저 바라볼 수만 있는 대상일 뿐 손에 넣기는 힘든 대상이었다. 저자는 “파리라는 곳을 향유하려면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들레르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베냐민은 1930년대에 파리를 연구하면서 유행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창출하는 아케이드에 주목했다. 당시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부르주아 여성들은 ‘정가(定價) 판매’를 내세우는 아케이드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체면’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베냐민은 여기서 자신의 체면이나 허영을 충족시키는 ‘기호’로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읽어냈다.

○ 시인 유하-철학자 보드리야르

1991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는 시집을 낸 유하는 당시의 소비문화를 시로 표현했다. ‘오징어’라는 시에서 그는 ‘눈앞의 저 빛!/찬란한 저 빛!/그러나/저건 죽음이다/의심하라/모오든 광명을!’이라고 썼다. 소비문화의 빛에 걸려든 인간의 모습을 집어등에 이끌려 포획되는 오징어에 비유한 것이다.

저자는 유하의 짝으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를 선택했다. 1970년 출간한 ‘소비의 사회’에서 보드리야르는 “사물은 기호(sign)라는 가치를 띠게 된다. 세탁기는 도구로서 쓰이는 것과 함께 행복, 위세 등의 요소로서의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신제품이 계속 나오고 계속 팔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사용가치만 중요하게 여긴다면 사람들은 신제품 광고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성 모델이 새로운 세탁기 앞에 선 광고를 보면서 사람들은 이 세탁기에 부여된 에로틱함, 새로움, 행복함이란 ‘기호가치’에 이끌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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