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청년구직자들에 보내는 ‘희망편지’

  • 입력 2009년 7월 3일 21시 00분


"젊은이들이여, 심리적으로 늘 익숙한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당장 나와라. 오히려 평생 하고 싶은 직업,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직업에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미국 '50개 주에서 50개의 직업'을 체험하는 도전에 나선 미국의 '청년백수' 대니얼 새디키(26) 씨는 2일 현재 펜실베니아주 랭카스터에서 가구제작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9월5일 유타주에서 몰몬교 자원봉사일로 시작한 그의 대장정은 현재 41번째 주를 마치고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그가 2일 e메일을 통해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한국의 청년구직자들에게 희망의 편지를 보내왔다.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하잖아요. 그러나 내겐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실제로 미국 50개 주 곳곳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 제가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2005년 캘리포니아 주 사립명문 남캘리포니아대(USC) 경제학과를 졸업한 새디키 씨는 2년 동안 이력서를 2000개 이상의 기업에 보내고, 최종면접에도 40번 이상 갔으나 모두 실패했다. 결국 첫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파트타임 일자리였다. 그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일을 찾고 싶다"는 마음에 50개 주에 걸친 '구직순례' 대장정에 나섰다. "시간낭비"라고 반대하던 부모님이 그가 집을 떠날 때 주신 것은 두 병의 따뜻한 물과 '행운을 빈다'는 말 한마디였다.

"한국의 10대, 20대는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나 또한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제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부모님은 대기업과 안정된 생활을 원했지만, 그럴 기회조차 오지 않았어요. 저는 제 자신을 불확실성과 위험 속으로 던졌습니다."

그는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를 막론하고 각 주마다 특색있는 대표적인 일자리를 찾았다. 사우스 다코타 주에서 로데오 경기장 아나운서, 네브라스카주에서 옥수수농장, 텍사스주에서 석유 엔지니어, 켄터키주에서 경주마 돌보기, 미시건주에서 자동차 수리공, 오하오주에서 기상캐스터, 뉴올리언스주에서 블루스 클럽 DJ, 아칸소주에서 고고학 발굴대원, 애리조나주 국경순찰대원까지…. 그는 "50개 주를 돌아다니면서 일자리를 얻는데도 5000번 이상 거절당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1주일에 평균 500달러 씩 받으며 일했다. 처음엔 차에서 잠을 잤지만, 그의 구직탐험을 담은 블로그 '리빙더맵'(www.livingthemap.com)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직장 동료들의 집에서 숙식을 하는 등 따뜻한 환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한 석탄 광부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30년씩 지하에 들어가 탄을 캐낸 베테랑 선배들과 운동부족인 자신의 체력의 격차가 너무 컸다는 것. 그러나 그는 "탄광이 매우 구시대적이고 힘든 직종인 것으로 알았는데, 공기정화시스템과 안전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의외로 깨끗한 곳이었다"며 "막연한 직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많은 직종이 젊은이들에게 기피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탄광 동료들은 "캘리포니아 해변가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리던 젊은이인 줄 오해했는데 그와 함께 일하면서 무척 즐거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새디키 씨는 "매주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며 "그러나 다행히도 한가지 일에서 배운 기술을 다른 직업에 이용하는 법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플로리다주에서는 테마파크인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이집트 오시리스 미이라로 분장을 하고, '미이라의 복수'라는 놀이기구 앞에서 줄 선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유니버셜 측은 "셰디키 씨는 1주일만 일하지만, 정식 직원고용과 똑같은 절차를 통해 선발했고 투입 전 교육도 똑같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 낚시를 해봤으며, 처음 사냥을 해봤고, 처음으로 트랙터를 몰아봤다"며 "새로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거절당하는 것에 좌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디키는 어느덧 미국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CNN, 폭스뉴스를 비롯해 그가 방문한 각 주의 지역신문과 방송은 그가 가는 곳마다 취재경쟁을 펼쳤다. 그에겐 정식 일자리 제의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미시시피 주에서 경험한 '영양사(Dietarian)'가 인상깊었고, 평생 직업으로 생각중"이라고 밝혔다. 비만인구가 30%가 넘는 미시시피 주에서는 식이조절을 통해 건강을 총괄적으로 관리해주는 이 직업의 전망이 매우 좋아보였다는 이유였다. 세디키 씨는 향후 뉴욕 주의 주식 매매인, 고향인 캘리포니아에서 마지막으로 영화 디렉터로서 50번째 직업체험을 마칠 예정이다.

그의 이력서엔 일반적인 학력, 자격증 란 외에도 빼곡히 적혀 있는 '경험(experience)'란이 눈길을 모은다. 그는 "모든 경험은 적어도 하나씩 지혜를 주는 것 같다"며 "어떤 직업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찾아가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디키 씨는 구직을 원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인턴십과 같은 다양한 직업체험과 인적 네트워킹을 쌓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처음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지만 30개 이상 주를 거치면서 전직 고용주들이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는 등 '인적 네트워크'가 엄청난 도움이 됐으며 앞으로 내 인생에도 커다란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노지현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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