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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마당집 좋아” 아이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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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마당집 좋아” 아이가 웃는다

입력 2009-07-03 03:00수정 2009-09-2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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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부부 한옥에서 살아보니…

주말이면 손에 손을 잡고 나온 커플들, 거대한 디지털 일안 반사식(DSLR) 카메라를 하나씩은 꼭 손에 든 출사족(族)들로 북적이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때나마 호젓하고 고즈넉하던 그 특유의 분위기를 찾아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웅장하고 부담스러운 가회동 한옥마을과 달리 30평대의 아담하고 소박한 한옥이 가득한 이 골목, 이곳은 2000여 가구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의 삶은 뭐가 다를까. 한옥에 살면 좀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길까. 답을 찾기 위해 이곳에 실제로 사는 30대 부부의 일기장을 빌려봤다. 2005년 결혼해 세 살짜리 장난꾸러기 아들을 둔 이천석 씨(31)와 구지영 씨(32) 부부가 일기의 주인공이다. 이전까진 쭉 남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다가 지난달 대지 31평(건평 15평)짜리 삼청동 한옥집으로 이사했다. 아들에게 조금 더 흙을 밟고 놀 기회를 주고 싶어서다. 사실 이 동네는 매물이 잘 나오지 않지만 이들 부부는 1억5000만 원 정도에 운 좋게 전세로 들어갔다.

이제 ‘한옥 라이프’를 체험한 지 어언 한 달째, 그간 그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일기는 평소 꼼꼼한 성격의 지영 씨가 기록했다. 이들의 한 달 속엔 한옥에 사는 소소한 재미와 실망이 함께 녹아 있었다.

○ 만만치 않은 한옥살이

2009년 5월 22일은 고대하던 한옥으로 이사 가는 날이었다. 하지만 일기 속엔 짐을 옮기는 일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꿈에 그리던 한옥으로의 이사! 좁은 골목은 운치 있지만 이사 트럭이 들어갈 수 없어 멀리 차를 세우고 짐을 옮겨야 했다. 비용도 더 들었고 일하시는 분들로부터 원성도 들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사 전에 그렇게 짐을 줄였건만 집안 곳곳, 마당 전체가 꽉 차서 결국 층층이 쌓아뒀다. 미리 그려 간 배치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냉장고가 들어갈 자리는 좁고 책장은 방 높이보다 키가 크다. 이사하느라 언니네 맡겨놓은 아이는 좀 천천히 데려와야 할 것 같다.’

이사 다음 날부터 일주일은 내내 이삿짐 정리와 집수리가 이어졌다. 아파트보다 공간이 좁다 보니 불필요한 물건은 모두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부족한 수납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싱크대 한 칸은 뺐고 책장은 낮아진 천장 높이를 맞추기 위해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짐 정리가 끝나도 아파트에선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불편함은 있었다. 우선 한옥엔 방충망이 없다. 창문에야 있지만 집 전체를 둘러싸는 미닫이문에는 달 수가 없기 때문.

‘잘 땐 침대 위로 큰 모기장을 치고 모기향을 피우지만 저녁엔 밥 먹을 때도 계속 날아드는 모기를 감수해야 한다. 조금 무섭기도 하다. 누군가가 담이나 지붕을 타고 넘어올지도 모른단 생각에 밤에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곤 한다. 지금이야 날이 따듯하지만 겨울이면 미닫이문 사이로 찬바람이 쌩쌩 불어올 테니 월동 준비도 필요할 것 같다. 아파트에선 내복 없이 살았는데 올겨울엔 내복에 점퍼까지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다.’(6월 4일)

한옥에는 주차 공간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사하면서 원래 차를 살 계획이었지만 이 부부도 결국 차는 포기했다. 그 대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현대백화점에 다니는 천석 씨는 매일 아침 10분 거리에 있는 안국역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한다.

○ 한옥은 아이의 새로운 놀이터

이 씨 부부의 아들은 한창 장난도 많이 치고 호기심도 왕성한 세 살이다. 이사 오던 날도 골목 어귀에서부터 ‘우와’라는 감탄사를 연방 외치며 신이 났다고 한다. 평생 봐 왔던 익숙한 아파트촌과는 너무도 다른 새 동네의 모습에 시골에라도 놀러온 걸로 생각했을 수 있다.

글=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디자인=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비 듣는 소리-마당의 파란하늘 ‘황홀’

지영 씨의 이사 첫날 일기에도 아이가 흥미로워 하는 모습이 적혀 있다. ‘승찬이는 유독 방으로 들어가 부엌을 거쳐 마루로 나오고 댓돌을 딛고 마당에 내려올 수 있는 입체적인 구조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마당 수돗가에 물을 틀어주니 작은 화단에 물도 주고 손도 씻으며 즐거워한다. 새 집이 좋으냐고 물으니 환하게 웃으며 “응 마당집 좋아” 라고 대답한다. 역시 이사하길 잘했다.’

물론 집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아파트와는 다른 구조가 아직 어린 아이에겐 위험한 환경이 되기도 했다. 처음 며칠간은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마루에서 떨어져 울기도 했다. 마당 끝에 별채로 지어진 화장실 위 옥상도 난간이 없다 보니 위험할 것 같아 지영 씨가 직접 입구에 문을 달았다. 손재주가 좋은 지영 씨는 작년부터 취미로 목공 기술을 배우고 있다. 을지로 시장에서 목재와 경첩, 손잡이 등 부자재를 비롯해 마감용 오일과 외부 목재용 프로텍터를 샀다.

‘아이가 어느새 기특하게도 곧 조심해서 다니는 법을 터득해 넘어지지 않고 다닌다. 한옥에 살면 아이의 조심성도 커지고 발달에도 좋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정말 그런가 보다. 마당에서 햇살을 받으며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 가슴이 벅차고 감사하다. 순하고 명랑한 아이는 운치 있고 여유로운 한옥에서 더 행복하게, 더 지혜롭게 자라날 것 같다.’(6월 12일)

○ 왁자지껄, 사람 향기 나는 집

이 씨 부부도 처음에 떠올렸던 한옥에 대한 이미지는 흔히 고급스러운 한옥 카페나 갤러리에서 봐 왔던, 전통과 현대가 완벽하게 조화된 그런 세련된 공간이었다. 한옥으로 이사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처음 꿈꿨던 집의 모습도 당연히 그랬다. 하지만 전세로, 그것도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할 여력 없이 이사를 오다 보니 그렇게 ‘멋드러지게’ 사는 일이 마음처럼 쉽진 않았다. 순간순간 ‘아 괜히 이사했나’ ‘돈만 쓰고 고생만 한 건가’라는 고민도 당연히 했다.

한옥에 걸맞게 완벽한 인테리어를 갖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한옥은 모델하우스가 아니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면서 점차 없어지고 있다는 게 이들 부부의 말이다. ‘촬영용 집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사람 냄새나는 집이다. 완벽한 모습은 아니어도, 조금 지저분한 살림살이들이 여기 저기 있더라도. 이젠 완벽하게 집을 꾸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좀 더 여유롭게 한옥을 즐겨야 겠다’(6월 1일).

이 부부가 강력 추천하는 한옥의 또 다른 매력은 화단. 지영 씨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시장에서 황금측백과 소나무, 목향 등 묘목을 샀다. 화분에 인터넷에서 구입한 자갈과 마사토, 퇴비 섞은 흙을 순서대로 담은 뒤 묘목을 심었다. 마당 한구석을 차지하는 화분들 덕분에 삭막해 보이던 집안이 한결 아늑해졌다.

보통 그냥 이사해도 찾아오는 집들이 손님이 많기 마련. 이 집은 워낙 ‘튀는’ 한옥이라 찾아오는 사람들도 훨씬 많다. 이사한 후 거의 매주 주말이면 시댁, 친정 식구들과 친구들이 구경 삼아 놀러오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얼굴도 볼 겸, 한옥에 이사 와서 어떤 고생을 하고 있나 확인할 겸 우리 집에 놀러 온다. 그래도 좋다. 신선한 야채와 된장을 넣어 쓱쓱 비벼먹는 된장 비빔밥 한 그릇, 시원한 솔잎주스 한잔만 대접해도 한옥에서의 만남은 반갑고 즐겁다. 할 얘기가 없을 땐 마당에 앉아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처마 사이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된다. 조만간 다기 세트를 준비해 먼 길 와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따듯한 차를 대접해야겠다. 한옥에서 사는 동안은 이렇게 계속 주말만이라도 시끌벅적한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6월 23일 일기 제목: 한옥은 시끌벅적 해야즐겁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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