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스포츠와 함께 하는 포토 트레킹]제주 우도 올레길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어느 돌담 너머로나 수평선

《우도 쇠머리언덕에서

일출봉을 바라보며 종이새를 접었다

소망을 싸듯 종이새를 접었다

그리고 구름처럼 날려 보냈다

가다가 갈매기 되고

가다가 기러기 되라고

가다가 네 소망 내 소망 함께 타고

결국 마라도를 거쳐

어디로 갔나

마라도에 와서 종이새를 찾았다

<이생진 ‘종이새’ 전문> 》

소섬(우도·牛島)은 ‘제주 속의 섬’이다. 아니다. ‘제주 밖의 섬’이다. 우도는 제주 오른쪽에 ‘소라 귀’처럼 붙어 있다. 제주 ‘왼쪽 소라 귀’ 추자도보다 더 크다. 해는 우도와 일출봉에서 두둥실 떠오르고, 추자도와 차귀도 너머 바다로 미끄덩 사라진다.

우도사람들에게 뭍은 곧 성산포다. 배를 타고 나가 성산포에서 장을 본다. 제주 성산포 사람들에게 섬은 곧 우도를 말한다. 우도의 마늘과 땅콩은 단연 인기다. 우도 마늘은 달큰하고 향기롭다. 땅콩은 고소하다. 우도쇠머리언덕은 성산일출봉을 보고 웃고, 일출봉은 쇠머리언덕을 보고 웃는다.

우도는 ‘소가 풀밭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물소가 막 바다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남쪽이 쇠머리(132m)이고 북쪽이 쇠꼬리이다. 그 사이는 평평한 쇠잔등이다. 섬사람들(1600여 명)은 그 쇠잔등에서 마늘이나 땅콩농사를 짓는다. 늙은 해녀들은 바다에서 소라나 성게를 잡거나 바다풀을 딴다. 섬 전체 면적 중 논밭이 67%나 된다. 임야는 15%에 불과하다.

섬 어느 곳에서나 돌담 너머로 수평선이 보인다. 수평선은 때론 벽이지만, 때론 구만리장천 이어도세상이다. 사방이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섬. 노란 민들레꽃처럼 낮게 엎드려 느릿느릿 되새김질하고 있는 섬. 느긋하고 평화롭다. 이생진 시인(80)은 아예 우도를 ‘아기의 나라’라고 노래 부른다.

‘우도엔 아이들만 들여보냈으면 좋겠다/아이들만 있으면 위험하다고?/천만에/그건 어른들 때문이다’(‘아기의 나라’ 전문)

우도 올레길(16.1km)은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거의 바닷가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한 바퀴 돌 듯 돌면 된다. 섬은 동서 2.5km, 남북 3.8km로 자그마하다. 슬슬 걸어도 3시간이면 너끈하다. 걷는 내내 파도와 바람소리가 길동무를 해준다. 짭조름한 바다냄새와 상큼한 생풀냄새가 버무려진다.

우도 올레길은 제주 올레길의 축소판이다. 시범케이스이자 오픈게임이다. 제주올레를 시작하기 전에 숨고르기로 우도를 한바퀴 걸으면 안성맞춤이다. 다리도 풀고 제주냄새도 맡을 수 있다. 언덕 바다 절벽 해수욕장 마을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그늘이 없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우도항엔 자전거나 스쿠터를 빌려주는 곳도 있다. 뭍에서 온 어린 소녀들이 깔깔대며 자전거를 타고 간다. 어르신들은 스쿠터로 올레길을 둘러본다.

우도는 꽃 천지다. 쇠머리언덕 등대는 연보라 수국꽃으로 둘러싸여있다. 꽃 하나가 작은 접시만 하다. 등대절벽 따라 내려가는 길은 노란 민들레꽃 지천이다. 하얀 산딸기꽃도 길가에서 웃고 있다. 검붉은 산딸기 열매(복분자)가 저 혼자 익다가 지쳐 떨어지고 있다. 시큼하고 새콤하다. 늦가을 홍시 맛이다.

푸른 달개비꽃이 벌써 피었다. 노란 괭이밥꽃, 연분홍 패랭이꽃과 갯메꽃, 선홍색 양귀비꽃, 연보라 엉겅퀴꽃, 울긋불긋 코스모스꽃…. 검멀래 해변엔 사람 키만 한 선인장들이 노란 꽃을 매달고 서 있다.

우도엔 마을마다 방사탑(防邪塔)이란 검은 돌탑이 있다. 마을을 보호해주는 수호신 같은 것이다. 육지의 장승 솟대나 같다. 삿된 기운을 막아준다고 믿는다. 쇠꼬리부분 오봉리에 있는 답다니탑은 초소역할을 한 망대(望臺)이다. 1948년 4·3사태 때의 아픈 흔적이다.

비양동 앞바다는 늙은 해녀들의 수다소리가 왁자하다. 할망 해녀들은 얕은 바다에서 물질을 한다. 동네 앞바다마다 따로 ‘할망 바다’가 정해져 있다. 그곳은 늙은 해녀들의 전용 바다 밭이다. 젊은 해녀들은 멀고 깊은 바다에 들어간다. 올레길을 가다보면 곳곳에 ‘해녀의 집’이 있다. 해녀들 사랑방이다. 그곳에서 물질 채비도 하고, 물질이 끝난 뒤엔 잠깐씩 몸을 쉬기도 한다.

쇠머리언덕 뒤편의 깎아지른 절벽(높이 20m, 폭 30여 m)은 바위가 책같이 켜켜로 쌓여 있다. 부안변산 채석강 비슷하다. 파도와 끼룩끼룩 갈매기소리가 어우러져 한가롭다. 서쪽 산호해수욕장은 산호모래로 된 모래밭이다. 상아가 부스러져 된 모래 같다. 눈부신 옥양목 빛깔이다. 산호모래를 밟으면 발바닥이 시리다.

장마철 제주는 끈적끈적하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밑도 끝도 없이 불어댄다. 천지가 눅눅하다. 몸이 영 ‘껄쩍지근’하다. 비는 오지 않고 자욱한 안개가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이어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안개 속에 드러나는 하얀 억새와 노랗거나 하얀 들꽃들은 황홀하다. 희끄무레한 안개 속에서 하얀 산딸나무꽃이 층층으로 웃으며 맞는다.

중산간은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 한라산과 바다 사이에 끼여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안개가 자욱하다가도 금세 햇볕이 난다. 그러다가 한순간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하지만 중산간 지역에 있는 오름(새끼화산)은 달항아리 같다. 그 부드러운 선과 아늑하고 푸근함. 달빛 속 달항아리, 안개 속 달항아리, 억새 사이로 보이는 달항아리….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은 생전에 “볼륨이 풍만한 오름들을 볼 때마다 오르가슴을 느껴 혼이 나갈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달 밝은 밤이나, 안개가 짙고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면 미친 듯이 오름으로 내달렸다. 폭설이 내려도, 무지개가 떠도, 오름으로 달려갔다. 그는 오름이 웃고, 울고, 수다 떠는 소리를 정신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바다사진 속에 새가 등장하지만 새의 울음소리, 바람의 강약, 바닷가 특유의 향기 등은 사진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은 이미지의 미라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박제된 동물이나 새가 아니다. 새의 생김새나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새가 숲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 무리끼리 지저귀는 소리에 숲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나는 그런 숲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표현하려 한다.’(김영갑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에서)

제주엔 오름이 360여 개나 봉긋봉긋 솟아 있다. 가운데 큰 달항아리(한라산) 하나에, 빙 둘러 고만고만한 고추장 옹기, 백자 요강, 씨앗 독들이 올망졸망 장독대를 이룬다. 성산읍 중산간 용눈이오름은 약 80m의 아담한 백자항아리다. 알오름이 2개나 된다. 북쪽 다랑쉬에서 봐야 제격이다. 프랑스 화가 앵그르(1780∼1867)의 그림 ‘목욕하는 여인들’ ‘샘’에 나오는 풍만한 여인들이 떠오른다. 여인의 둥근 엉덩이 같기도 하고, 젖가슴 같기도 하다. 오름 뒤의 풍력발전소 바람개비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오름 우묵배미 비탈에선 소들이 풀을 뜯는다. 사위는 조용하다. 싸락싸락 풀 뜯는 소리가 귀에 간지럽다. 소들은 풀밭에 코를 박고 있다. 늑골이 오르내린다. 풀밭이 물결친다. 춤을 춘다. 겨이삭 개민들레 제비꽃 할미꽃 미나리아재비 찔레 국수나무 억새 꽃향유 산딸기…. 소들은 먹어야 할 풀만 정확히 가려 먹는다. 장끼 우는 소리가 아득하다. 꺼병이들이 줄달음으로 풀밭을 가로지른다.

제주는 카멜레온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한다. 제주를 수백 번 이상 가본 사람들은 “제주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든다. 제주사람들은 아예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한라산과 오름과 바다에 파묻혀 산다. 어쩌다 제주를 오가는 사람들만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제주는 안개다. 문득 정일근 시인의 노래 소리가 뒷덜미를 쿵 친다.

‘소라 구멍에 귀를 가져다 대면 소라가 전하는 바다의 말 야이이이이이이이개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태안반도에서 들었다’ 전문)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트레킹 정보|

◇교통 ▽성산포∼우도 배편=약 3.8km 15분 소요(종달리∼우도 약 2.8km 12분 소요), 성산포 출발 첫배 오전 8시, 우도 출발 막배 오후 6시(1시간 간격). 우도 입도요금 성인 3500원, 자동차 소형 4000원, 대형 6000원. 우도면사무소 064-783-0004

▽먹을거리=성산포 시흥해녀의 집(064-782-9230) 조개죽, 성산포 오조해녀의 집(064-784-7789) 전복죽 전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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