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감정+논리’ 카메라앞 소통정치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타운홀 미팅’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암에 걸렸는데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다”는 중년여성을 포옹하고 있다. 애넌데일=로이터 연합뉴스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타운홀 미팅’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암에 걸렸는데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다”는 중년여성을 포옹하고 있다. 애넌데일=로이터 연합뉴스
"1998년에 신장 악성종양이 생겼어요… 방사능 치료를 오래 받다 보니 후유증으로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직장을 잃으니 의료보험도 없어졌어요. 종양이 재발했는데 이젠 치료받을 길이 없어요."(53세의 미국 버지니아 주민 데비 스미스 씨)

"음… 잠깐 이리 나와 주실래요?"(버락 오바마 대통령)

이어 흐느끼는 중년여성을 대통령이 포옹해준다. 여성의 사연을 안타깝게 듣던 청중들의 박수가 터진다. 오프라윈프리 쇼 같은 TV 토크쇼의 한 장면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애넌데일 시에 있는 북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건강보험 개혁을 주제로 타운홀 미팅(주민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TV는 물론이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인터넷 사이트들이 생중계했다.

둘러앉은 200여 주민들 사이에 선 대통령은 7건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백악관이 인터넷으로 사전에 접수해 선정한 질문은 답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화당의 반대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세간의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주최 측은 총 69분의 토론회 내내 정교한 논리와 드라마적 요소가 적절히 섞이도록 무대를 꾸몄다. 데비 씨를 포옹한 대통령은 "데비, 당신은 개혁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증거물 1호(exhibit 1)'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홀로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건강보험 개혁의 '인간적 얼굴'을 강조했다.

사실 데비 씨가 '오거나이징 포 어메리카'라는 단체의 자원봉사자인 것을 비롯해 즉석 질문자로 선정된 3명은 모두 오바마 지지 조직 관계자들이었다. 데비 씨는 사전에 백악관에 신청해 토론회에 참석했다. 현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우연히 데비 씨를 질문자로 지목하는 것처럼 보였다. 데비 씨가 사전에 질문자로 내정돼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트라이시티'란 데비 씨 거주 지역 인터넷 언론은 행사 전날부터 데비 씨의 토론회 참석 소식을 게재했다. 데비 씨는 트라이시티에 "만약 대통령에게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이란 전제하에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장소도 세심히 선정됐다. 애넌데일은 한인 상권이 발달해 '코리아 타운'이 형성된 중산층 타운이지만 최근 히스패닉 이민자가 많이 유입돼 소득계층이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이처럼 '기획된' 무대에 대해 공화당은 "오바마를 위한 쇼"라며 발끈하지만 이른바 '그림이 되는 건' 야당의 비판성명이 아니라 무보험 암환자를 껴안는 대통령의 얼굴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수시로 의회를 방문해 경기부양책을 '세일즈'했고 취임 후엔 타운홀 미팅식의 대민 접촉을 꾸준히 기획하고 있다. 딱한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가 포옹 한번 해주고 돌아오는 형식이 아니라 논리적 토론과 드라마가 결합되게 한다. 일방적 훈시 대신 항상 대통령이 토론의 전면에 나선다. 그러면서 반대론을 매서운 논리로 궁지에 몰아붙인다.

이날도 오바마 대통령은 "반대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대안이 뭐냐. 점점 더 많은 가족들이 의료 보험을 잃어가는 걸 수수방관 하겠다는거냐"며 건강보험 개혁 반대론에 '비인간적'이란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연결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각료들을 농촌 벽지로 보내 민의를 수렴하는 '농촌투어'에 나서게 했다. 마치 옛 중국 공산당의 하방(夏放)처럼 휴가철에 민심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첫 순서로 1일 조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해 상무, 농무장관 등이 펜실베이니아 농촌을 방문해 벽지에도 초고속 인터넷이 깔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백악관 일정표에 따르면 9월 30일까지 9차례 농촌투어가 계속된다. 방문지역 대부분이 '스윙 스테이트(민주 공화당 지지도 차이가 박빙인 선거 격전지역)'라는 점에서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는 '민심 속으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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