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정치사박물관 ‘사회주의 흔적’ 지운다?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소련 말기 공산당 지도자인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이 남성 공산당원의 입술에 키스하는 장면이 러시아 정치사박물관에 소개됐다. 브레즈네프를 풍자하는 전시물이라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소련 말기 공산당 지도자인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이 남성 공산당원의 입술에 키스하는 장면이 러시아 정치사박물관에 소개됐다. 브레즈네프를 풍자하는 전시물이라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공산당 독재 풍자展 열고, 볼셰비키 혁명 패자 재조명

‘사회주의 유물을 대체할 역사의 보고를 찾는다.’

러시아 국립 정치사박물관이 최근 내놓은 전시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이 박물관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지도자 니콜라이 레닌이 이른바 ‘4월 테제’를 발표할 때 이용했던 건물이었다. 볼셰비키 간부들은 1919년부터 이 건물에다 박물관을 열고 사회주의 혁명을 선전했다. 이 박물관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지금까지도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정치를 해석하는 풍향계 구실을 하고 있다.

요즘 이 박물관은 이오시프 스탈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소련을 통치하던 시절에 공산당 기관지에 싣지 않았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혁명위원회가 열리는 자리에서 앉지도 못하고 레닌 옆에 서 있는 야윈 스탈린의 모습, ‘우둔한 지도자’로 불렸던 브레즈네프가 남자 공산당원에게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돋보였다. 박물관 안내자는 “공산당 독재와 개인숭배의 허상을 보여주는 풍자물”이라고 소개했다.

구소련 시절 볼셰비키 혁명을 줄곧 찬양하던 2층 전시관에서는 1918년 내전 당시 적군에 대항했던 백군의 복장과 포스터 등이 새로 등장했다. 백군 복장에는 지금 러시아 국기의 원형인 빨강 파랑 흰색의 삼색 줄무늬가 붙여져 있다. 관람객들은 “사회주의 혁명에 가려져 있던 내전의 처참한 장면과 패배자 백군을 재평가하려는 흔적이 역력하다”고 한마디씩 던졌다.

1층 전시관에서는 제정러시아 말기에 재무장관을 지냈던 세르게이 비테의 유품들이 선보였다. 비테 장관은 러시아 영토 확장을 위해 9000km가 넘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준공했지만 볼셰비키에 의해 부르주아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혔던 인물이다. 2층 혁명관 옆에는 제정러시아 왕비로부터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 고르바초프 여사에 이르기까지 사회 지도층 부인들이 입었던 의상이 새로 전시됐다.

박물관 측은 “제정러시아의 의회정치를 재조명하는 유물이나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등 최근 정치인들에 대한 전시도 사회주의에 미련을 갖고 있는 옛 공산당원과 일부 구세대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